중국 사대기서(四大奇書) 중의 하나로 꼽히는 <수호지>는 그 배경을 송나라 말에 두고 있는 소설이며, 내용 중의 108명 주인공들 대부분이 실존 인물이라 한다. 내가 극화 그리는 일을 직업으로 삼았을 즈임인 1973년, 일간스포츠에 <수호지> 연재를 시작했지만 넘버 투맨, 옥기린, 노준의의 등장 직전에서 어떤 사정에 의해 절필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27년 뒤인 2000년, 스포츠투에이에 또 한 번 수호지를 소재로 한 극화를 게재했는데 그 역시 비슷한 정도의 내용에서 펜촉의 먹물을 닦고 말았다.
고우영
1939년 만주 본계호에서 태어나 광복 후 귀국. 한국 전쟁 전후에 이름난 아동만화가였던 고상영 .일형, 두 형의 영향으로 중학교 2학년때 <쥐돌이>를 발표하면서 만화계에 대뷔.
1958년 돌째형 일영(추동식)이 연재하던 <짱구박사>를 `추동성` 이라는 작가명으로 이어 연재하면서 본격적인 만화가로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72년 일간스포츠에 연재했던 <임꺽정>은 일본 만화에서는 볼 수 없는 독창적인 그림체로 우리 만화의 새로운 장을 여는 동시에 만화가 단순한 아동용 오락물이 아니라 엄연한 하나의 장르임을 일깨워주었다. 1975년<수호지>,1978년<삼국지>등을 연이어 발표, 풍자와 해학 속에 당대를 투영하는 `고우영식 고전해석`으로독자들의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다.
이후 <초한지> <서유기> <열국지> <십팔사략> 등이 고우영식 고전으로 새롭게 탄생되었으며, 1980년대 들어서부터 <가루지기전> <21세기 아리랑 놀부뎐> 등 우리 고전들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발표하였으며 2003년에는 조선 시대 역사를 다룬 <수레바퀴>를 출간했다.
<< 두 번씩이나 붓을 놓아야 했던 사연 많은 고우영 '수호지' >>
동양고전들을 만화로 독특하게 재해석해 작품성과 대중성 모두를 겸비한 작품들을 내놓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온 고우영 화백이 '수호지'를 출간했다. 원말 명초의 시내암이 쓰고 나관중이 개작하여 전하는 '수호지'는 중국 4대 기서 중의 하나. 송강을 중심으로 108명의 호걸들이 양산박에 모여 조정의 부패를 통탄하고 관료의 비행에 맞서 싸우는 영웅호걸들의 이야기이다.
이번에 출간된 '수호지'는 고우영 화백에 있어, 또 우리 만화계에 있어 남다른 감회가 있는 작품이다. 1970년대 첫 연재를 시작했지만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이제야 비로소 그 마무리를 짓게 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1973년 당시 일간스포츠에 첫 연재를 시작했을 때 고우영의 '수호지'는 송나라의 학정에 반발하는 양산박 두령들이 불온한 저항을 선동한다는 이유로, 관군이 뇌물에 매수되는 장면은 국가 권위를 실추시킨다는 이유로 외압에 의해 원고 수정을 거듭했고 급기야 스스로 분에 못 이겨 붓을 꺾고 연재를 중단했던 불행한 작품이었다.
그로부터 27년 후인 2000년 '스포츠투데이'에 '수호지 2000'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새롭게 의욕적인 연재를 시작했으나, 이번에는 작가의 건강상의 문제 등 여러 이유 때문에 부득이 연재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던 것. 결국 '수호지'는 단행본 출간이라는 형태의 세 번째 시도로 그 완결을 기대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 되었다.
<< 국민만화가 고우영이 모든 공력을 쏟아부은 작품 >>
고우영은 고전을 누구보다 맛깔스럽게 표현하는 능력을 타고난 만화가다. 어떤 고전이든 그의 손이 닿으면 언제나 새로운 모습으로, 쉽고 재미있게 독자들에게 다가간다. 이번에 출간된 '수호지'는 그가 아니면 표현할 수 없는, 현실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발견으로 능청스럽기까지 보일 정도다.
마치 그동안의 한(?)이라도 풀겠다는 것일까. 이번에 출간된 '수호지'에는 그의 모든 공력이 담겨 있는 듯하다. 고우영 만화의 전매특허인 기지가 넘치는 해학 속에 담긴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현재에 대한 풍자, 그리고 유쾌한 웃음과 작가 특유의 에로티즘 거기에 호쾌한 액션까지... '수호지'는 고우영 만화의 모든 것이 다 들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번씩이나 연재를 중단했던 아픔 끝에 작심하고 작화에 몰두한 만큼, 거리낌없이 마음껏 만화적 표현을 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30년 동안 기다려온 독자들에게 기필코 보답'하겠다는 작가의 굳은 맹세로 펴내고 있는 고우영 '수호지'는 이제야 그 완결을 볼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열혈 독자들의 기대를 부풀게 하고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