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전 당시 24세에 불과했던 제임스 D. 왓슨은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탐구 여정이 시작되는 데 한몫을 했다. 지금 그는 어느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권위와 식견으로, 멘델의 정원에서부터 이중 나선을 거쳐서 인간 유전체 서열 분석과 그 너머에 이르기까지, 유전자 혁명의 드넓은 경관을 최초로 하나하나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
지은이ㅣ제임스 D. 왓슨 1928년 4월 6일 미국 일리노이 주 시카고에서 태어나 1947년 시카고 대학교에서 동물학을 전공했다. 학부 시절에 에어빈 슈뢰딩거가 쓴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탐독했으며, 1950년에는 인디애나 대학교에서 파지 그룹 생물학자인 샐버도어 루리아 밑에서 파지 유전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51년 봄에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캐번디시 연구소에 박사후 연구원으로 갔는데 거기서 공동 연구자이자 런던 유니버시티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프랜시스 크릭을 만났다. 1953년 크릭과 함께 DNA의 이중 나선 모형에 대한 논문을 '네이처'에 발표했으며, 1962년 DNA의 구조를 밝힌 공로로 크릭, 윌킨스와 함께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캘리포니아 공대(CalTec) 연구소, 하버드 대학교 등에서 교직을 역임했으며 20여개 대학에서 명예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8년부터 1992년까지는 미국 국립 보건 연구소에서 인간 유전체 계획을 이끌어 유전체 염기 서열을 밝히는 데 많은 기여를 했다. 오랫동안 콜드 스프링 하버 연구소 소장 및 회장으로도 일해왔다. 지은 책으로 <이중 나선>, <유전자의 분자생물학>, , <세포분자생물학>, <재조합 DNA> 등이 있다.
제1장 유전학의 출발: 멘델에서 히틀러까지
제2장 이중나선: 이것이 생명이다
제3장 부호 읽기: DNA 에서 생명으로
제4장 신과 놀이를 하다: DNA 주문 제작
제5장 DNA, 달러, 약: 생명공학
제6장 식량을 둘러싼 논쟁: 유전자 변형 농업
제7장 인간의 유전체: 생명의 시나리오
제8장 유전체 읽기: 행동의 진화
제9장 아프리카 기원설: DNA와 인류의 과거
제10장 유전자 지문: DNA가 법정에 선 날
제11장 유전자 사냥: 인간 질병의 유전학
제12장 질병에 대한 도전: 유전병의 치료와 예방
제13장 우리는 누구인가: 천성 대 양육
세균을 구슬려 인간의 단백질을 생산하도록 만들기는 쉽지 않다. 특히 까다롭게 만드는 것은 인간의 유전자에서 단백질 부호를 지니지 않은 부위인 인트론이다. 세균에게는 인트론이 없으므로 인트론을 다룰 수단도 가지고 있지 않다. 인간의 세로가 전령 RNA를 조심스럽게 "편집"해서 이렇게 부호를 지니지 않은 조각을 제거하는 반면, 세균은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인간의 유전자에 제대로 된 단백질을 만들 수 없다. 따라서 인간의 유전자에서 만들어지는 단백질을 대장균이 생산하도록 하려면 먼저 인트론이라는 장애물을 제거할 필요가 있었다. 이 새 경쟁자들은 그 문제를 각기 다른 방향에서 접근했다. 제넨텍 사의 전략은 인트론이 없는 유전자를 화학적으로 합성한 다음 그것을 플라스미드에 삽입한다는 것이었다. 즉 사실상 원래의 유전자를 인공적으로 복제한 것을 증식시킨다는 계획이었다. 지금은 이런 성가신 방법은 거의 사용되고 있지 않고 있지만, 당시에는 제넨텍 사의 방법이 사실 더 뛰어난 전략이었다. -p. 135-
<< 생명의 시나리오, 유전자 세계를 엿본다 >> [조선일보 / 박 돈규 기자]
1953년 4월 과학 전문지 ‘네이처’에 짧은 논문이 실렸다.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이 쓴 ‘우리는 디옥시리보핵산(DNA)의 구조를 제창하고자 한다’로 시작되는 이 논문은 DNA가 이중나선구조라는 점을 최초로 밝혔고, 이는 과학혁명으로 기록될 만한 사건이었다.
꼭 50년이 흐른 지난 4월, 인체(人體)의 설계도인 인간 게놈지도가 완성됐다. 염기(鹽基) 서열이 100% 해독되고 인간 게놈이 3만5000∼4만개 유전자로 구성됐다는 사실이 확인됨에 따라 난치병 치료 등 획기적인 성과들로 이어질 전망이다. 제임스 왓슨은 DNA 이중나선구조 발견 50년을 기념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단순하면서도 우아할 것. 왓슨이 아데닌(A)·티민(T)·구아닌(G)·시토신(C) 등 DNA가 지닌 4개의 뉴클레오티드를 짝짓기하며 이중나선구조를 발견할 때 깨달은 이치다. 부드럽게 뒤틀리며 서로 반대 방향으로 이어지는 두 가닥들은 생물학의 가장 오래된 수수께끼, 즉 ‘유전정보가 어떻게 저장되고 복제되는가’라는 의문을 풀어주었다.
유전학은 “왜 아이가 부모를 빼 닮을까” 라는 해묵은 궁금증에서 움텄다. 이 책은 아주 작게 줄어든 신체 부위들이 섹스할 때 전달된다는 히포크라테스의 범생설(汎生設)부터 비밀의 문에 가장 근접했던 멘델의 완두콩,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혈우병, 히틀러의 인종차별적 우생학(優生學)에 이르기까지 유전학의 역사를 되짚으며 DNA와 생명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진리는 종종 단순하다. 폐렴을 일으키는 폐렴쌍구균만 해도 그렇다. 이 균주는 표면이 매끄러운 S형(型)과 거친 R형으로 나뉘는데, S형을 생쥐에 주입하면 며칠 만에 폐렴으로 죽는 것과 달리 R형을 넣은 생쥐는 건강하다. 생쥐의 면역체계가 외피를 두른 S형 폐렴쌍구균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부드러움은 거침보다 오래 살아 남는다.
DNA 연구는 1970대부터 생명공학으로 몸집을 키웠다. 세균을 구슬려 인슐린처럼 인간에게 꼭 필요한 단백질을 뽑아내게 만드는 건 까다로운 일이었지만 혁명적인 결과를 낳았다. 이미 유전자 치료, 유전자 지문(指紋), 유전자 변형 농업을 넘어 인간 복제까지 거론되고 있다.
유전자는 생명의 시나리오다. 우리의 성공과 넋두리가 담긴 것은 물론 사고를 뺀 사망의 원인과도 관련이 있다. 왓슨은 자신과 과학자들이 겪은 생생한 일화들을 소개하며 DNA 연구의 미래까지 조망한다. 생물을 전공한 신춘문예 출신의 작가가 한 번역도 쉽고 명쾌하다.
<< 'DNA 생명의 비밀'…인류, 생명의 열쇠 손에 쥐다 >> [동아일보 / 홍 영남 (서울대 생명과학부교수)]
2003년은 DNA의 이중나선구조가 발견된 지 50주년이 되는 해이자, 때맞춰 인간 유전체 서열 분석이 완료된 해이기도 하다. 50년 전 24세의 나이로 분자생물학 발전의 중심에 서 있던 저자 제임스 잡슨이 올해 이 책을 펴낸 것은 매우 의미가 크다. 그는 분자생물학에 관련된 폭넓은 주제들과 그 발전과정, 그리고 그 중요성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21세기의 주역인 DNA를 가장 가까이에서 목격해 온 잡슨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DNA 총론’이다. 저자는 유전학의 발전사를 상세히 전개하는 것으로 시작해 ‘DNA 야말로 유전의 비밀을 숨긴 물질’이라는 결론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소개하고 있다. 아울러 저자는 유전학의 이름을 빌린 ‘사이비 과학’ 이 인류의 비극을 초래할 수도 있음을 잊지 않는다. 유전학에 대한 무지는 ‘우생학’(유전 법칙을 이용해 인간 종족의 개선을 연구하는 학문)을 낳았고, 이로 인해 야기된 나치의 우생학은 유대인 대학살의 동기가 됐다는 점 등을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독자의 시선을 가장 끄는 부분은 DNA의 이중나선이 발견되기까지 학자들이 벌인 숨 막히는 경쟁이다. 최후의 승리자는 결국 이 책의 저자인 잡슨과 동료인 프랜시스 크릭이었다. 그들은 “무엇이든 단순하면서 우아한 것은 옳은 것이다”라고 말했는데, 이 말은 과학사상의 핵심적인 직관과 진실을 담고 있는 듯하다.
저자는 이중나선 발견 이후 20년 동안 유전자 기능의 기본 메커니즘을 규명하기 위해 벌인 학자들의 노력을 마치 드라마 또는 영화처럼 생생하게 펼쳐내 더욱 흥미를 끈다. 많은 유전자들은 오직 특정한 세포에서 특정시기에만 활동한다.
학자들의 노력 결과 유전자들의 ‘활동 스위치’가 어떻게 켜지는지를 밝힌 점은 DNA 연구에 있어서 일종의 혁명이었다. 인간이 DNA를 마음대로 재조합할 수 있는 방법이 탄생한 것이다. 이 때문에 과학자들은 상아탑에서 벗어나 ‘생명공학 산업’의 주체로 등장하게 됐다. 과학자들은 이제 ‘특허 경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좋은 착상이란 결국 기나긴 과학적 탐구의 시작에 불과하다. 생명공학의 길은 여전히 멀다. 과학자들의 이런 모험이 궁극적으로 인간에게 밝은 미래를 보장할 수 있을지는 아직도 알 수 없는 문제다. 그럼에도 질병과 식량문제, 그리고 환경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한 인간의 ‘유전자 사냥’은 현재도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다. 암, 유전병, 유전자 조작 농업, 유전자 지문을 통한 범죄수사 등이 현실화되고 있다.
한편 생명산업에 대한 연구는 이 연구가 인간에게 해를 끼칠 가능성을 제기하는 반대 운동에 맞닥뜨리고 있기도 하다. 생명산업 연구 반대 운동론자들의 음울하고 파멸적인 시나리오에 대해 저자는 “현실과 거리가 멀다”라는 의견을 여러 차례 표명하고 있다. 그의 과학에 대한 신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정치적 또는 경제적이 아니라 과학적인 관점에서 생명공학에 대한 문제를 긍정적으로 다루고 있다.
지금까지의 저자가 쓴 책들이 인간 게놈에 대한 연구에만 치중했던 것과는 달리, 이 책은 무엇이 우리를 생물학적으로 ‘다른 종’과 갈라놓는지에 대해 중요한 설명을 내놓는다. 무엇이 우리를 인간으로 만드는지, 인간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에 답을 찾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인간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천성이 아니라 교육’이라는 이론을 반박한다. 인간이 노력에 의해 크게 변화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진 이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인간의 재능이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선천적 능력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는 것은 최근의 여러 객관적 검증을 통해 확인되고 있기도 하다.
저자는 인간 행동에 유전적 요소가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인간이 진화의 산물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인간을 창조적이고 지배적이며 아울러 파괴적인 존재로 만든 것이 바로 DNA라는 것이다. 인간의 행동도 유전자에 의해 결정될 수 있음을 그는 조심스럽게 피력하고 있다.
오늘날 생명공학은 미래를 바꾸어놓을 과학기술의 목록 중에서 가장 윗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렇게 되기까지 많은 일들이 일어났지만 생명을 분자적 방식으로 접근하는 현대 생명공학의 발전을 가능하게 한 중요한 세가지 사건으로 흔히 디엔에이(DNA) 이중나선 구조 발견(1953), 종의 경계를 뛰어넘어 자연상태에 존재하지 않는 유전자 배열을 인위적으로 만드는 재조합 디엔에이(recombinant DNA) 기술의 등장(1970년대 초), 그리고 사람의 디엔에이 염기서열을 모두 해독한다는 목표로 1990년에 출범한 인간유전체프로젝트(Human Genome Project)를 꼽는다. 이 책의 저자인 제임스 왓슨은 프랜시스 크릭과 함께 디엔에이DNA 이중나선구조를 발견했고, 인간유전체프로젝트의 책임자로 상당기간 동안 활동했다. 세가지 사건 중에서 두가지를 주도했고, 역시 미국에서 이루어진 보이어와 코언의 재조합 디엔에이 실험도 눈앞에서 직접 지켜보았다. 따라서 왓슨이 디엔에이 발견 50년의 역사를 당사자의 관점에서 개괄할 수 있는 매우 적절한 인물 중 한 명이라는 데에는 거의 이견이 없을 것이다.
실제로 이 책은 이중나선 구조 발견 이후 생명공학의 전개과정을 총괄하고 있다. 말하자면 왓슨판 총정리인 셈이다. 왓슨은 과학자로서 뿐아니라 저술가로도 매우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이다. 1968년에 쓴 자전적 에세이 『이중나선』은 과학자가 쓴 글로는 예외적으로 디엔에이 이중나선 구조 발견을 둘러싸고 벌어진 연구자들 사이의 경쟁과 갈등, 여러 인물들의 성격 묘사 등을 숨김없이 기술해서 엇갈린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지금까지 가장 꾸준히 팔리는 과학서 반열에 올라 있다.
이 책도 예외가 아니다. 인간유전체 프로젝트의 완성까지를 다루는 전반부는 생명공학 발전의 돌파구를 연 과학자로서의 배경과 이후 엄청난 정치적 영향력을 가진 명망가로 활동한 경력을 토대로 디엔에이가 작은 실험실을 벗어나 단일 연구프로젝트로 가장 큰 규모의 거대과학으로 발전하고 정치경제적 권력으로 부상하는 과정을 소상하면서도 실감나게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이 서술은 『이중나선』과 마찬가지로 철저히 왓슨의 관점에 의한 것이다. 가령 DNA 이중나선 구조 발견에 결정적인 증거였던 엑스선 회절사진을 제공했지만 노벨상 수상에서 배제되었던 로잘린 플랭클린의 업적은 이 책에서도 여전히 홀대받고 있다. 과거 페미니스트들은 『이중나선』이 철저히 프랭클린을 무시했고, 요절한 프랭클린이 여자라는 이유로 노벨상을 강탈당했다고 비난했다. 재조합 DNA 기술로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유전자를 가진 생물체가 인체와 생태계에 미칠 위험을 우려해서 과학자들 스스로 모라토리엄(연구중단)을 선언했던 최초의 사례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를 인정받는 아실로마 회의는 대중의 편집증과 언론의 무모한 보도로 공연히 5년이라는 연구 공백만 빚은 쓸데없는 소동으로 묘사된다. 또한 최초로 생명공학의 안전과 윤리 문제를 제기한 사람 중 한 명인 제레미 리프킨은 “걱정꾼”, “반대 전문가”로 매도된다.
그런데 이 책에 한층 관심이 집중되는 부분은 인간유전체 프로젝트 이후 비교적 최근에 이르는 시기를 다룬 후반부이다. 여기에서 왓슨은 유전자조작식품, 유전자 증거의 법정 채택, 유전적 향상을 위한 적극적 유전자 치료, 지능을 비롯한 인간의 여러 특성의 유전적 기반 등 윤리-사회적으로 극히 민감한 주제들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물론 그의 일관된 입장은 확인되지 않은 안전이나 모호한 윤리 논의가 엄청난 효용성과 이익을 가져다 줄 유전자 연구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미 오래전에 과학자-정치가로 나선 왓슨이 현업 과학자들이 다루기 껄끄러운 문제들을 대신 걸터메고 DNA 연구 50년이라는 반환점을 돌아, 최근 유전자 조작식품, 복제인간, 인간배아연구 등에 대한 전세계적 우려와 규제 분위기를 정면돌파해서 본격적인 DNA 개발-생산의 시대로 나아가려는 전략일 것이다. 사실 그런 역할을 할 사람으로 왓슨만큼 적절한 인물이 또 있겠는가. 이 행진을 가로막는 모든 것은 그에게 오직 장애물일 뿐이니 말이다. 어쨌거나 오는 9월 생명윤리기본법 국회 상정을 코앞에 두고 있고, 핵심 쟁점인 인간배아복제와 종간교잡 허용여부를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시점에 발간되었다는 점에서 그의 의견에 동의하는 사람이든 반대하는 사람이든 한번씩 이 책을 들춰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어쩌면 이것도 최근 1~2년 사이 여러 권의 책을 내놓고 있는 그의 노회한 전략의 일부인지 모른다.
<< ‘생명공학 아버지’의 독설 >> [문화일보 / 구 정은 기자]
디옥시리보 핵산(DNA)의 이중나선구조가 밝혀진지 올해로 50년. 그동안 생명과학 분야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사실 최근 몇년간 과학계 소식에서 가장 큰 뉴스는 모두 이 분야에서 나왔다. 복제양 돌리 파문은 인간이 창조주의 역할까지 맡게 된 것이냐는 논쟁을 낳았고, 인간게놈 프로젝트(HGP)라는 초인류적인 사업이 세상에 선보였다. ‘생명공학’이라는 낯선 분야가 출현한 것도 그리 오랜 일은 아니다. 논란 속에서도 인간은 분명 생명의 신비에 한걸음씩 다가가고 있다.
신비의 문을 여는 열쇠를 제공한 최대 공헌자는 이중나선구조를 규명한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이다. 1953년 4월25일자 ‘네이처’에 실렸던 이들의 1쪽짜리 짧은 논문이 새시대를 열었다. 공로를 세운 두 사람 중에서도 특히 왓슨은 활발한 사회활동과 저술로 주목을 받아왔다.
왓슨은 거만한 사람이다. 그의 글은 자신감 넘치다 못해 때로는 읽는 이들을 황당하게 만들 정도로 공격적이다. 이 책은 이중나선 규명 50주년을 맞아 왓슨이 초파리 전문가 앤드루 베리와 함께 쓴 생명공학 역사서인데, 일반인들도 알 수 있도록 쉽게 썼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논쟁적이다. 왓슨의 이전 저작들과 마찬가지로 거침없는 표현으로 가득차 있다. 서른넷에 노벨상을 받고 ‘천재’ 소리에 이골이 난 왓슨 같은 사람이 아니라면 동료 내지는 동업자들에 대한 이런 식의 서슴없는 평가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독자들에게는 재미를 주는 부분이지만 이 책에 언급된 과학자들은 귀가 상당히 간지럽지 않았을까.
이중나선의 발견은 생명공학의 출발점이었다. 그리고 50년. 지금 시점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왓슨이 자신의 업적 이후의 상황을 개괄하면서 택한 주제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그는 이 책에서 모든 신비주의자들과 사이비 과학을 상대로 싸움을 건다. 생명공학에 무조건 시비를 거는 제레미 리프킨류나 환경단체들에 대해서는 욕설에 가까운 표현을 쏟아내면서 공격한다. “당신들이 있지도 않은 위험성 운운 할 때에 제3세계 아이들은 굶어죽고 있다.” “유전자 조작이 위험하다고? 이미 수백만년 전부터 자연이 스스로 해온 일일뿐인걸.” 특유의 독설이라고만 생각하고 넘길 수는 없다. 왓슨은 뛰어난 과학자일 뿐만 아니라 생명공학산업의 발전사를 누구보다 세밀하게 지켜본 사람이다.
이태 전 우리나라에서도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금지시킨 생명윤리법안 시안 문제로 과학자들과 시민단체들이 맞붙은 적이 있다. 기자는 이 논란을 지켜보면서 시민단체들의 판에 박힌 ‘선험적’ 주장에 놀랐고, 목소리 큰 쪽에 질질 끌려가는 정부의 ‘무의식’에 다시 놀랐었다.
‘윤리’의 이름으로 과학에 가해지는 공격 중에는 아직도 신비주의적인 것들이 널려 있다. 겁내기 전에 우선 알아야 한다. 생명공학을 백안시하기 전에, 인간복제라는 말에 지레 움츠러들기 전에 왓슨 같은 이가 외치는 소리도 들어야 한다. 생명공학을 과학의 사생아 정도로 치부해버릴 수 있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 생명공학 밑거름된 DNA규명 >> [한국일보 / 편집부]
제임스 D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이 1953년 발견한 DNA 이중나선 구조는 새로운 과학으로 나아가는 열쇠가 됐다. 두 가닥의 염기쌍이 나선 모양으로 꼬여 있다는 DNA 구조를 밝힌 공로로 두 사람은 196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DNA: 생명의 비밀』은 DNA 이중나선 발견 50주년을 기념해 펴낸 책이다. DNA 발견 과정과 생명의 비밀, 유전에 얽힌 이야기 등이 담겼다. 생명공학 분야는 인간의 조건을 개선하고 투자 환경을 개선하려는 노력의 근원이 되었다. 왓슨은 그의 발견이 인류의 기원과 집단과 개인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에 관한 지식을 얼마나 크게 변화시켰는지를 보여준다.
왓슨의 발견은 순수 과학을 거대 산업에 응용하는 생명공학을 낳았다. 유전자 복제를 통해 당뇨병을 치료하는 인슐린을 대량생산하고, 병해충에 강한 유전자 변형 농산물을 생산한다. 미토콘드리아에 들어있는 DNA를 추적해 인류의 아프리카 기원설을 뒷받침하고 ‘DNA 지문’을 확인해 법정 증거로 삼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