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철주는 한 생애를 다해서 관능의 일탈과 자유를 도모한다. 도모는 곧 헤메기인 것인데, 그의 눈은 끊임없이 빚어지고 스러지는 세상의 모든 빛깔과 선과 형상을 쫓아다니며 노느라고 바쁘다. 그림을 통해 지극한 아름다움과 덧없음 그리고 즐김에 대한 이야기.
손철주 미술 칼럼니스트. 신문사에서 미술 담당 기자로 오랫동안 국내외 미술 현장을 취재했다. 신문사 문화부장과 취재본부장 등을 역임했고, 현재 '학고재' 주간이다. 저서로는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 가 있다.
- 앞섶을 끄르고 - 프롤로그 / 마음껏 떠듭시다
1. 옛 그림과 말문 트기 2. 헌 것의 푸근함 3. 그림 좋아하십니까 4. 그림 속은 책이다
- 에필로그 / 사라지고 싶구나 - 앞섶을 여미고 - 인물 설명
잘 보고 잘 듣자 (108 ~ 109 P)
낮술이 약해졌나 봅니다. 벌써 취기가 오르는 모양이군요. 천천히 드십시오. 까짓것 오늘 하루 제끼죠. 겨울글 몇 줄 팔아 밥 빌어먹는 신세. 하루쯤 개긴다고 누가 뭐 잡아간댑니까. 괜찮습니다. 오늘 술값은 제가 치르겠습니다. 원고 청탁 하나 받은 게 있거든요. 형이 낸 책이 좀 팔리걸랑 나중에 한 잔 사십시오. 우선 제 주머니부터 털겠습니다. 아니, 저 게으른 것 아시잖아요. 아직 뭘 써야 할지 줄거리도 못 잡았습니다. 제가 그림 이야기 묶어서 책 한 권 냈잖아요. 그래선지 여기저기서 재미있는 그림쟁이들 얘기 좀 해달라는 주문을 가끔 받습니다. 그럴 때마다 이거 뭐 부를 노래 다 부른 놈이 앵콜 받는 기분입니다. 할 수 없이 또 케케묵은 곡조나 봅아야 할까 봅니다. 요새 젊은 독자들 성미가 참 까탈스럽대요. 먼지 묻은 얘기는 딱 싫어합니다. 젊은 사람들과 어울릴 때 괜히 한 수 뒤지는 느낌, 그거 고약합니다. 왕년에 좀 놀아 본 사람일수록 그 느낌은 더욱 강한 법이지요. 밑천 다 털어 실컷 지껄이고 나면 돌아서서 "저 늙다리, 뽕짝이네." 하는 게 젊은 치들입니다. 그래도 전 일부러 버팅깁니다. 깐놈들이 신곡 ？어 봤자 그게 그거지, 논다는 골에 들병이만 하겠습니까. 새 것 들고 자랑하는 사람 기 죽이는 데 가장 약발 잘 받는 게 뭔줄 아십니다. 바로 헌 것의 푸근함입니다. 형은 연암 박지원을 괴이한 사람이라고 그랬죠. 그렇지요. 귀신같은 사람일시 분명합니다. 저 기절한 비유는 기가 찬 데다 비부에 딱 달라붙은 사례를 읽는 이를 문장의 자장 안에 움쩍달싹 못하게 붙들어매는 글솜씨는 뭐랄까요, 조선 땅에 전무후무 공전절후 입니다. 이 사람 이야기를 좀 해 볼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