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이미 미술사와 고고학 분야 그리고 새타이어와 패러디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흔들림 없는 고전 중의 고전이다. 특히 사변적인 민중 예술론이 아니라 보다 실증적인 민중 예술론을 연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의 또다른 저서 <민중 판화의 역사>와 함께 최상의 교과서이기도 하다. 그러나 단지 고고학이나 미술뿐만이 아니라 고대와 중세의 연극,문학,풍속,음악 등등의 사실들과 폭넓게 연계되어 있어서, 디자인과 만화 등 현대적 영상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도 고전으로 삼아 손색이 없다.
샹플뢰리
프랑스의 문인. 본명은 쥘 위송이다. 빅토르 위고의 칭송을 받은 <겨울 환상>등의 소설을 통해서 객관적 관찰에 바탕을 두고 진실을 추구하는 사실주의 경향의 대표적 작가가 되었다. '리얼리즘'이라는 선언문의 저자로서 이른바 19세기 리얼리즘 경향의 가장 열렬한 실천가였다. 같은 경향의 화가 쿠르베와 도미에의 옹호자이기도 하다. 소설 못지않게 주목을 받고 논쟁을 불러일으킨, 예술에 관한 일련의 저작들은 그 엄격하면서도 신랄하고, 풍부한 학식과 확고한 자료에 근거하면서도 유연한 문체와 매혹적인 상상 때문에 라블레 이후 최고의 풍자작가라는 평판을 얻었다. 특히 예술에서 고루한 종교적 상징성의 도식에 따른 해석을 부인하고, 불굴의 정신으로 그 민중적 기원을 모색하고, 그 비상징적 영역의 찬란한 자발성을 밝혀낸 그의 저작들은 오늘날 예술사 연구에서는 물론이고, 모든 형태의 체제 순응주의적 제도와 문화를 거부하고, 진정한 자유와 해방의 정신을 탐구하려는 사람들에게 귀중한 모범이 되고 있다. 기존의 신화학과 종교학이 외면했던 이미지 세계를 폭로한 그의 방대한 <풍자예술의 역사>는 그의 사후에도 수십 년 동안 중쇄를 거듭하면서 이 분야의 전문가, 지식인, 예술가는 물론 대주의 커다란 사랑을 받았다.
[1] 고대
1. 앗시리아인과 이집트인은 희극성을 알고 있었을까?
2. 풍자작가의 적, 아리스토텔레스
3. 화가 파우손
4. 가정, 동물, 풍경을 그린 화가들
5. 희극화가들
6. 엄밀한 뜻의 풍자 - 화실
7. 아이네이아스와 안키세스 패러디
8. 그릴레스
....
[2] 중세
1. 공허한 상징주의
2. 동물 악사
3. 당나귀 축제
4. 성당과 수도원의 춤
5. 악마
6. 망자들의 춤
7. 여우
8. 루이 15세 치하에서의 「여우 이야기」의 영향
....
성당과 수도원의 춤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에는 대성당과 수도원에서 교회의 커다란 축제와 관련된, 특이한 축연들이 벌어졌다. 부활절 그리고 특히 성직자들만이 아니라, 교회의 고위 성직자들도 참여했다. 수도원 경내에서, 수사들은 이웃한 수도원의 수녀들과 어울려 춤추었다. 주교들도 그들의 즐거움에 끼어들고자 교인들을 찾아왔다. 에르푸르트 시의 연대기에는 뇌출혈로 사망했을 정도로 과격하게 춤에 빠져들었던 주교의 이야기가 인용되어 있다. 이런 세세한 사건들을 재빨리 낚아채어, 과장하곤 했던 교회의 적대자들에게 이는 멋진 게임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춤으로부터 당연힌 적지 않은 추문들이 터져나오기 때문이다. 예컨대 나는 14세기의 삽화가 곁들여진 성서 한 권에서 다음과 같은 세밀화를 찾아냈는데, 그것은 수사들이 여자들을 데리고 즐겁게 푸짐한 식사를 하고 있는 수도원 식당 내부를 재현한 것이었다. 종종 당시의 수사본 그림에서 반복되는 이러한 판화가 지나치게 정력적인 종교인들을 성가시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제들이 종종 성서들 속에 추잡스러운 장면의 재현인 것 못지않게, 그에 대한 주의로서도 소개되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이 세밀화 밑에 적힌 글귀는, 종교인들이 과식과 육욕을 피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적지 않은 타락이 수도원 내부에서 벌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반복에 싫증을 내지 말아야 하는 역사학자로서는 현재를 요약해야 하고 또 과거를 풍습과 관습의 전체 속에서 보아야 한다. 커다란 축제의 시대에, 교회에서의 춤은 신성한 봉사를 끌어올리는 펌프의 일부로서 간주되었다.
<< 풍자화'에 담긴 고대ㆍ중세 민중의 본능 >> [조선일보 / 유재원(한국외국어대학교언어학과교수)]
석양이 질 때 아크로폴리스를 바라보는 슬픔을 맛본 사람은 파르테논 신전을 지은 사람들이 얼마나 위대한 이상을 가졌었는지 절로 느낀다. 이런 감동을 받고 나면 저토록 우아하고 고상한 예술품을 만든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너무도 고상해서 자연이나 인간의 추잡하고 흉한 모습을 그렸을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착각이다. 조선 시대의 선비들이 사군자만 친 것이 아니라 때때로 해학과 골계가 가득한 민화도 그리고 심지어는 남녀 사이의 욕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춘화도 그렸듯이 세태를 조롱하고 비웃는 그림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다.
저자 샹플뢰리는 바로 이런 관점에서 고대 세계와 중세의 ‘풍자의 역사’를 연구하기 시작한다. 1860년대 유럽의 지식인 계급은 고대 그리스에는 올림포스 신들이나 페리클레스, 소크라테스와 같은 고매한 인격을 가진 역사적 영웅들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하는 풍자 예술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믿었다. 그러나 샹플뢰르는 고대 작가들의 기록과 당시 한창 꽃피우기 시작한 고고학 발굴에서 출토되는 귀한 유물들을 바탕으로 이런 부르조아적 편견이 얼마나 잘못 된 것인가를 상세히 밝힌다.
저자는 우선 고대 그리스보다 앞선 문명인 아시리아와 이집트에서부터 탐구를 시작한다. 그 옛날의 화공들도 파라오나 서기들의 위선은 물론 지고한 존재인 신들을 조롱하고 야유하는 그림을 그렸다. 한 파피루스에는 쥐에게 연꽃을 바치는 고양이가 묘사되어 있다. 이런 그림을 통해 이집트의 화공은 파라오에게 표했던 존경을 야유하고 있다.
이렇게 지배 계급에 대한 조롱과 야유를 그린 풍자화는 그리스 시대에도 있었다. 특히 화가 파우손이 이런 그림으로 유명했다. 고상한 정신을 숭상했던 아리스토텔레스는 상스러운 그림을 그린 화가 파우손을 비난하고 그의 그림을 매장하려 했지만 아리스토파네스와 플루타르코스, 루키아노스 같은 사람들이 이 화가에 대해 남긴 기록들 때문에 성공하지 못한다.
폼페이 벽화에 유난히 큰 성기를 지닌 신 프리아포스나 난쟁이 족속 피그미의 그림이 많이 나타나는 것도 풍자를 위한 것이었다. 구석진 벽에 그려졌던 고대 낙서에서도 당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풍자화를 그렸던가 하는 증거가 나온다.
이런 풍자 예술의 전통은 근엄하고 지극히 종교적인 중세에도 그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위선이 가득한 이 시대에 풍자화는 더 기승을 부린다. 유럽의 대성당 안을 자세히 살펴보라. 당시 일꾼들이 성당의 높은 기둥 머리에 숨겨 놓은 부조들은 하나같이 괴상하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한 동물들이나 난쟁이들을 묘사하고 있다. 그래서 중세 성당들의 분위기는 음산하고 괴기스럽기까지 하다.
흔히 풍자 예술은 근대의 산물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풍자의 예술』을 읽어 보면 풍자는 인간에게, 적어도 민중에게는 본능임을 깨닫게 된다. 그리스 속담대로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 시대를 조롱한 '풍자의 미학 >> [동아일보 / 유윤종기자]
근엄하고 거룩해야 할 대성당 기둥 위에 갖가지 기괴한 형상의 괴물이 앉아 있다. 눈에 익은 노트르담 성당 뿐만이 아니다. 짐승들이 십자가를 들고 행진하는 성당 장식, 배설하는 남자가 새겨진 시청사의 기둥머리…. ‘경건한’ 시대로 여겼던 중세시대의 작품들이다. 왜 이런 괴물들의 모습이 남아있는 걸까?
19세기 중반의 문인이자 미술사가였던 저자는 고대 건축물, 중세 건축물과 수도원의 희귀본 및 기록화 등을 꼼꼼히 추적해 옛 시대를 수놓은 풍자미술의 자취를 추적한다.
저자는 중세 풍자미술의 기원을 기독교 수립 이전의 고대 이교풍습 및 플리니우스 등 고대 박물학자들에게서 찾는다. 기독교의 전래와 함께 유럽의 민속신앙은 사라진 듯 보였지만 미개 종족들이 섬기고 두려워한 괴물들은 성당의 기둥과 외벽에 달라붙었다는 것. 개 머리를 한 사람과 뱃가죽 한가운데 눈이 있는 종족 등 고대 박물학자가 남긴 온갖 괴물의 기록도 중세 조각가와 삽화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괴물들’이 중세를 살아남았을까? 중세의 이 기괴한 풍자들은 민중이 시대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잠시나마 숨쉴 수 있는 ‘배출구’였다. 때로는 당나귀와 어릿광대를 위한 축제가 열려 주교와 봉건영주를 야유하기까지 했으나 지배자들은 이를 관대히 허용했다.
“대성당들은 예배만을 위한 곳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변론하고 거래하고 세속적 오락도 즐겼다.” 수사들의 교훈서에 실린 원숭이 당나귀 등의 우스꽝스러운 삽화는 풍자를 통해 올바른 몸가짐을 깨우치도록 하는 데 이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저자가 무엇보다 힘주어 강조하는 것은, 유치하고 추해 보이기까지 하는 이 풍자예술의 ‘힘’과 ‘가치’다.
“아름다움만을 염두에 두는 예술가보다, 패러디를 행하는 예술가가 더 조직된 두뇌의 소유자다. 그는 시대의 문제에 몰두하며 분노한다. 그의 분노는 그의 필력(筆力)을 이룬다. 아첨꾼의 천박함을 그 무엇이 보여줄 것인가? 압제자들에게 예정된 심판은 어떻게 표현되는가? 풍자화는 이 모든 질문을 위해 존재한다.”
다양한 자료그림은 글의 이해를 돕지만, 때로 직역투를 벗어나지 못한 번역문이 책장 넘기는 속도를 늦춰 아쉬움으로 남는다.
<< 야하고 저속한 고대풍습 탐구적 시각으로 접근 >> [문화일보 / 최영창기자]
동·서양을 막론하고 일반인들은 고대(古代)하면 이상향을 꿈꾸기 쉽다. 사실 이집트를 비롯해 그리스·로마 등지의 문화유산들을 보면 얼마나 장엄하고 고상한가. 영국의 대영박물관이나 프랑스의 루브르박물관을 방문한 관람객들은 고대문화가 가진 찬란함과 위엄에 기가 죽기 십상이다.
그러나 이는 겉으로 드러나는 일면일 뿐 지금과 동일한 인간이 살다간 고대의 문화나 생활에 저속한 측면이 없을 수는 없었다. 프랑스의 소설가 출신인 저자가 쓴 이 책이 관심을 끄는 것은 지금보다 고대문화를 훨씬 더 이상적인 것으로 이해했던 19세기 중반 유럽인들에게 하나의 신성모독처럼 생각될 수 있었던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서양 고대와 중세의 풍자예술을 소재로 삼은 책이 1865년 처음 출간됐을 때 학계 일부에서 고대 그리스 풍자예술의 존재를 부인하며 책의 내용에 이의를 제기했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해준다.
풍자예술의 가치는 지배층에 가려진 민중의 일상적 풍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찾을 수 있다. 가령 이집트 파라오 람세스의 대(大)스핑크스의 존엄함 뒤에는 과음에 빠진 고대 이집트 여인들이 있었다. 여성용 대야를 나르던 한 하녀가 구역질하는 몸짓이 그려진 당시 프레스코가 이를 보여주는 것이다.
파피루스에 그려진 사람을 동물로 표현한 풍자화들은 모세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책은 모두 5권으로 구성된 방대한 저작 가운데 고대와 중세편만을 한국어로 완역한 것이다. 저자가 책을 저술하게 된 것은 당시 유럽에 일고 있었던 고적 발굴붐이 한 원인이 됐다. 각지에서 새로운 유물이 발굴되면서 이에 대한 해석이 분분했기 때문이다.
기존의 학계나 종교계에서 상대적으로 외면하고 경시했던 풍자와 괴기성의 세계를 꼼꼼히 추적해 들어간 책은 지금 미술사와 고고학 분야는 물론 풍자와 패러디 연구자들 사이에서 변치 않은 고전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사실 20세기 들어와 풍자예술의 가치가 새롭게 주목되고 ‘엽기’가 하나의 문화적 흐름으로 등장한 최근의 현실을 비춰보면 이 책은 디자인과 만화 등 현대 예술의 다양한 분야에서 참고가 된다.
저자는 책에서 인간과 동물의 이미지가 혼합된 고대와 중세 풍자예술의 실용적이고 역사적인 측면을 탐구하고 있다. 이같은 저자의 시도는 그의 또다른 저서 ‘민중판화의 역사’와 함께 민중예술론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교과서로서도 손색이 없다. 르네상스 이후 시대만을 다뤄 고대·중세가 제외된 에두아르트 푹스의 고전적 저작인 ‘풍속의 역사’를 보완해주는 역할도 한다.
<< 풍자는 '역사의 뒷모습' 비추는 거울 >> [경향신문 / 김중식기자]
움베르토 에코가 소설 『장미의 이름』에서 문제제기를 했듯 왜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와 중세의 수도원은 웃음을 인간의 적(敵)으로 여겼던가. 실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스운 것에서 일종의 추함과 오류를 보았다. 데카르트도 ‘정념론’에서 웃음의 원인을 사소한 불행 혹은 가벼운 우연 탓으로 돌렸다. 18세기 내내 멘델스존 등은 웃음의 원인을 항상 조화의 부재에서 찾았다. 풍자예술은 역사의 쇠퇴기에 시작된다는 학설도 생겼다. 괴테는 “패러디는 한 민족에게서 퇴폐와 타락의 징후로 나타났다”고 했다.
과연 근대 이전의 서양은 엄숙주의의 시대인 듯하다. 이집트를 예로 들자면 람세스상·스핑크스·피라미드 등 기념비적 유물들은 위엄과 위압과 침묵 등 엄숙함 그 자체다. 고대 그리스의 조각을 보면 그리스인들은 한결같이 완벽한 영혼·정신·육체를 추구한 것처럼 보인다. 중세의 종교적 상징주의 시대에는 두말 할 나위도 없다.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프랑스 문인 샹플뢰리(1821~69)는 “옛날사람들이라고 해서 그저 고상한 것만은 아니었다”고 외쳤다. 그가 서양 고대·중세의 패러디 이미지를 분석한 저서 『풍자예술의 역사』(까치)는 조선시대 성리학자의 다락방에서 발견된 춘화집(春화集)처럼 호기심을 자극한다. 신성모독을 방불케하는 ‘저급한’ 풍자의 글·그림들이 한 자리에 모여있는 것이다.
사실 어느 시대에나 인간은 엄숙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으리라. 동서고금을 통해 못된 자들이 득시글거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천하의 아리스토텔레스와 종교가 풍자에 대해 족쇄를 채우고 재갈을 물려도 어용작가가 아닌 무명예술가들이라면 민중들의 증오·분노·야유·활기를 전하지 않았을 이치가 없다.
약 150년전의 저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희극론’을 발굴해내지는 못했지만 서양 고대·중세의 유물을 한껏 찾아내 옛날에도 희극·괴기·엽기가 흘러넘쳤음을 증명한다. 각종 우화·교훈담·그림·프레스코화·석상·모자이크·낙서·어릿광대 등에서 시대와 권력을 풍자하고 조롱하는 민중의 모습을 전한다. 예컨대 고대 이집트의 한 식민지 화가는 조공을 바쳐야 하는 조국의 슬픈 운명을 수코양이가 암코양이에게 거위를 바치는 모습으로 석회석에 그려냈다.
중세 풍자의 압권은 주로 ‘어릿광대’와 ‘죽은 자의 춤’에서 엿보인다. 어릿광대는 천성적으로 못생긴 존재이자 때로는 난쟁이·곱사등이의 모습을 지녔다. 그들이 누더기를 걸칠수록 비단옷을 입은 귀족을 풍자하는 힘이 커졌다. 그들은 한국 광대들의 탈놀음이 그랬듯 세치 혀와 몸놀림으로 지배자들의 습관·행동·악덕을 까발렸다. 죽은 자의 춤 역시 진지한 반어법이었다. 농부이든 그의 삯에서 십일조를 공제하는 지주이든, 정복자이든 피정복자이든 모두 ‘평등’하게 죽는다는 메시지는 지배권력에 대한 한바탕 풍자로 읽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머리를 당나귀 머리로 대치한 풍자화는 당연히 기독교 숭배에 대한 패러디이겠다.
옮긴이인 미술사학자 정진국씨는 “이 책은 에두아르트 푹스의 『풍속의 역사』가 다루지 못한 고대·중세 시대를 보완하는 흔들림없는 고전 중의 고전”이라면서 “민중의 감정을 이끌어낸 익명의 예술가들의 자발적 천재성과 현대예술이 잃어가고 있는 교훈적 구경거리의 즐거움을 되찾아주고 있다”고 밝혔다.
<< >> [한국일보 / 김관명기자]
프랑스 아비뇽 박물관에는 흥미롭게 생긴 청동상이 있다. 『명상록』을 저술한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재위 211~217)를 표현한 '카라칼라 입상'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청동상이 위엄있는 황제의 모습이 아닌, 우스꽝스럽게 생긴 난쟁이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한 손으로는 과자 바구니를 들고 다른 손으로는 과자를 나눠주는 이 기괴하게 생긴 청동상을 통해 조각가는 과연 무엇을 말하려 한 것일까.
『풍자예술의 역사』(정진국 옮김)는 서양 고대와 중세 풍자예술의 진면목을 일깨워주는 책이다. 지금껏 봐왔던 우아하고 고상한 예술 작품에 대해서가 아니라 추악하고 엽기적이고 괴상한 작품에 대한 꼼꼼한 관찰이자 탁월한 분석이다. 프랑스의 풍자작가 샹플뢰리(1821~1869)가 1865년에 쓴 이 책은 고대와 중세의 연극ㆍ문학ㆍ미술 등을 연구하는 이들에게는 예전부터 필독서로 여겨져 왔다.
카라칼라 입상에 대한 작가의 설명이다. "옹색한 키와 짧고 흰 다리는 동생을 죽이고 알렉산드리아 청소년들을 학살한 카라칼라에 대한 적나라한 야유이다. 과자는 그가 거둬들인 부당한 세금을 암시한다. 작가는 백성의 희생을 대가로 병사들에게 관용을 베풀었던 황제를 무참히 조롱하고 있는 것이다."
고대뿐만 아니다. 중세 유럽의 엄숙한 대성당 벽이나 기둥에 조각된 수많은 기괴한 조각은 무엇을 뜻하는가. 가마솥에 빠진 마귀, 여성의 국부를 핥고 있는 악마, 파이프 오르간을 두드리는 짐승.. 저자는 이것들을 '석공이 당시의 민중적 신앙을 좇아 원죄와 그 단죄에 대한 표상, 성직자에 대한 야유를 거친 모습으로 돌 위에 새긴 것'으로 풀이한다.
저자는 이렇게 고대의 항아리나 청동상에 새겨진 낙서와 반신반수 그림, 중세의 종교 건축에 붙어있는 조각과 세밀화 등을 통해 풍자 예술의 존재의의를 밝힌다. 다름아닌 그로테스크한 풍자를 통해 당대 사회를 비꼬는 역할이다. "풍자 예술의 부활을 통해 현대 예술이 잃어버린 교훈적 구경거리를 되찾을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속내로 파악된다.
<< 아리스토텔레스가 싫다 >> [한겨레신문 / 최재봉기자]
고대와 중세의 미술품과 건축에 나타난 풍자적 요소의 양상과 의미를 천착한 『풍자예술의 역사』가 번역 출간되었다. 정진국 옮김, 까치 펴냄. 19세기 프랑스 소설가 샹플뢰리(본명 쥘 위송, 1821~69)가 모두 5권으로 펴낸 책 가운데 고대와 중세 편을 한데 묶었다.
샹플뢰리는 빅토르 위고의 칭송을 받은 소설 『겨울 환상』 등을 통해서 당대 사실주의 문학의 대표작가로 자리잡았으며, <리얼리즘>이라는 제목의 선언문을 쓰고 같은 경향의 화가 쿠르베와 도미에를 열렬히 옹호한 사실주의 운동가이기도 했다.
미술사와 고고학 분야의 1·2차 자료들을 섭렵하고 작가 특유의 상상력을 덧붙여 구성한 『풍자예술의 역사』는 기존 미술사에서 무시되지 않으면 경멸당하기 일쑤였던 민중 예술품과 비주류적 표현양식에 주목한다. 지은이는 본격적인 분석에 들어가기 전에 `풍자작가의 적,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이름의 장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귀족주의적 예술관을 반박하며 자신의 입론을 마련한다. 아리스토텔레스만이 아니라 후대의 엄숙주의적 예술론 전체에 대한 비판으로 읽을 수도 있을 해당 구절은 인용해 둘 만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절대적 미에 대한 관념에 사로잡혀 풍자화의 능력을 오해하고 있다. 이 사상가는 철학적 추상에 빠져서 독재자들에 대한 민중의 모욕을 앙갚음하고, 야유하는 화필로써 광기의 사상을 번역한 이 예술을 하찮은 것으로 경멸하고 있었다.”
고대 이집트 프레스코화 중 시든 꽃을 들고 구토하는 하녀의 모습에 대한 분석으로부터 글을 시작한 지은이는 고대 희극화가와 희극배우들의 그림과 무대예술, 난폭한 황제에 대한 풍자, 피그미족에 관한 전설, 그리고 중세 성당과 수도원 등의 건물에 장식된 풍자적 조각과 그림들에서 “저주가 위대한 예술이 되는 순간”을 포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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