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 문학연구를 진행하면서 나는 1930년대 한국 모더니즘 문학을 경박한 외래추수주의라고 비판하는 것에 대해 반발하기 시작했다. 죽음 앞에서도 이상이 그토록 갈망하던 '레몬'으로 상징되는 진실이야말로 근대성 비판운동으로서의 모더니즘의 핵심항목에 해당되며, 그런 이상 문학으로 인해 한국 모더니즘 문학은 식민지 변방의 보잘것 없는 지방성 차원을 넘어 세계사적 보편성의 영역으로 진입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결코 동시대에는 충족될 수 없는 지식을 절대적으로 욕망하다 형해화되어 오돌오돌 떨다 죽어간 이상의 생과 문학에 형언학 수 없는 충격과 감동을 느꼈다.
문흥술
1961년 경남 사천에서 태어나 경희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 국문과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에 <인간주체의 와해와 새로운 글쓰기>가 당선되어 평론활동을 시작, <자멸과 회생의 소설문학>(1997), <작가와 탈근대성>(1997), <시원의 울림>(1998), <모더니즘 문학과 욕망의 언어>(1999) 등의 저서와 장편소설<굴뚝새는 어디로 갔을까>(2000), 편저 <운수 좋은 날>(2000), <태평천하>(2002), 공저 <소설 신라열전>(2001) 등을 펴냈다. 현재 서울여자대학교 한국어문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 책머리에
1. 모더니즘과 언술주체의 분열
2. 언술주체의 분열과 실어증의 유형
3. 한국 모더니즘의 특성과 전개과정
유사성 장애가 주조를 이루는 유형 (138 P)
이 유형은 무의식에 의한 <은유-대체>는 단순형태나 미미한 형태로 제시되고 있다. 대신 무의식에 의한 <환유-결합>이 작품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일정한 사건을 연결하고 이끌어가는 능력은 나타난다. 그러나 이들 사건들은 내적 필연성이나 인과관계에 의해 연결되지 못하고 핵심주제 없이 분산되어 있으며, 이 분산된 사건들을 인접관계로 연결하는 최소단위들만 있을 뿐이다. 이 유형의 언술주체는 마치 기억에 장애가 발생한 환자처럼 어떤 실제적 정황에 대해서만 반응할 뿐이며, 기억에 의한 연상이나 심리작용에 의해 그 반응을 <은유-대체>하는 능력을 상실하고 있다. 이들은 실제정황을 관찰하고 그것에 대해 이것 저것 생각하다, 곧바로 옆에 있는 인접한 다른 정황으로 관찰시선을 옮기고 있다. 이 유형은 문맥구성을 위해서만 기능하는 단어들인 대명사, 부사, 연결사, 조동사는 특히 보존된다. 반면 핵심적인 단어는 생략되거나 추상적으로 대용된다. 이 유형은 다시 두 가지로 구분될 수 있다. 첫째, 욕망의 혼재와 기억의 억압에 의한 <환유-결합>이 주를 이루는 경우로, <날개>,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 여기에 속한다. 둘째, 단편적인 기억 내지 기억상실증에 의한 <환유-결합>이 주를 이루는 경우로, <피로>, <딱한 사람들>, <방란장 주인>, <진통>, <거리>가 여기에 속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