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를 읽는 즐거움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삼국지>가 지닌 소설로서의 흥미를 말한다면, 달리 덧붙일 말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삼국지>야 말로 가장 오랫동안 독자들과 함께 살아온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이 책만큼 수많은 독자들에 의해 의미가 풍부해지고, 이야기가 더욱 다채로워지고, 삶의 의미를 더욱 영원하게 만든 이야기는 없다. 이 거대한 소설적 공간에 몸담은 독자들은 꼬리를 잡기 어렵게 이어지는 숱한 이야기의 여운들 속에서 엄청난 감정의 기복을 경험한다. 형언하기 어려운 긴장의 공백을 발견하며, 문득문득 몸을 떨게 만드는 외로움을 맛보기도 한다. 그러므로 <삼국지>는 하나의 이야기라기보다 일종의 거대한 우주라고 말할 수 있다. 이제 황석영의 <삼국지>가 보여주는 그 웅건한 문체와 호흡의 변화가 우리를 기다린다. 중원을 무대로 펼쳐지는 장대한 서사를 통제하는 문체의 힘이 다채로운 문장으로 표현된다. 이렇게 황석영의 <삼국지>를 자신의 언어적 감각으로 새롭게 복원하고, 그 속에 담긴 인간의 역사와 삶을 오늘의 현실에 서서 다시 해석한다. 고대중국의 <삼국지>가 황석영에 의해 다시 태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 놀라운 변화의 문체로 엮어낸 <삼국지>를 다시 대할 수 있게 된 즐거움은 독자들의 몫이다.
※ 특별부록 ※
1. 별책부록 <즐거운 삼국지 탐험>을 드립니다.
나관중
14세기 원말 명초의 뛰어난 통속문학가. 이름은 본(本, 일설에는 관貫), 호는 호해산인湖海散人이며, 관중은 자이다. 출생지에 관해서는 샨시성山西省 타이위엔太原 출신이라는 것을 비롯해 여러가지 설이 있고,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 없다.
대표작으로 진수의 <삼국지>를 바탕으로 민간의 삼국 설화와 원대의 '삼국희'등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삼국에 관한 이야기를 한꺼번에 엮어펴낸 <삼국지통속연의三國志通俗演義>가 있다. 그 밖의 나관중이 지었다고 전해지는 소설로는 <수당양조지전> <잔당오대지전> <평요전> <수호전> 등이 있고, 희곡 3편이 전하지만 실제로 그가 지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 삶의 거대한 허무와 역사의 큰 선 담았다 >> [조선일보 / 김태동기자]
소설가 황석영(黃晳暎·60)이 번역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출간 전부터 관심을 집중시켰던 ‘황석영 삼국지’(창작과비평사·전 10권)가 25일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방북 사건으로 옥중에 있던 1997년 번역에 들어간 이후 6년 여만에 이룬 결실이다.
황석영 삼국지는 출간에 앞서 지난 16일부터 교보와 영풍, 예스24, 알라딘 등에서 실시한 예약판매 이벤트에서 800질(8000권)이 팔리며 일찌감치 올 여름 출판가의 태풍으로 부상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1988년 이후 소설가 이문열씨가 1000만 권 이상의 누적 판매 부수를 과시하며 장악한 삼국지 시장에 가장 강력한 도전자가 등장했다는 점도 주목의 대상이다.
25일 인사동 한 음식점에서 만난 황씨는 “내가 올해로 환갑을 맞았다”며 “나이 들어 다시 만난 삼국지가 또 다른 맛을 풍기더라”고 했다. “젊은 시절에는 유비 삼형제가 죽은 뒤의 삼국지는 신명을 잃어 어쩐지 허전해져 대충 읽어 치웠는데, 이제는 후반부로 갈수록 인생의 깊은 성찰이 전해진다”고 말했다.
“젊은이들은 자기 가치관에 따라 칼처럼 단호하게 자르잖아요? 인터넷에 가보세요. 조그만 차이들이 서로를 용납하지 않고 무지개처럼 펼쳐지지만, 실은 시간이 많이 흐르고 나면 아주 큰 차이만 남고 작은 차이들은 없어집니다. 삼국지는 ‘역사에는 큰 선이 있다’는 것, 그리고 ‘거대한 허무’의 덕을 깨우쳐줍니다.” 그는 ‘거대한 허무’는 냉소주의가 아니라 ‘작은 것들을 관용하는 큰 안목’이라고 부연했다.
황석영 삼국지의 특징은 되도록 고전으로서의 ‘삼국지’ 원전에 충실하려 했다는 점. 중국 고대 인물화의 권위자인 왕훙시 화백의 컬러 삽화 150장을 실어 고급스러운 중국 정통 소설을 읽는 느낌을 주고, 주요 전투와 사건 전개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35장의 지도를 그려넣었다.
원전 충실한 '6년 역작'... 집필 중 안경 2번 바꿔 화려한 문장력 돋보여... 이문열 작품과 경쟁예고
각 권 앞에는 주요 무대가 되는 후한(後漢) 말기 중국 대륙의 지도와 권별 주요 등장인물 설명을 그림과 함께 실었고, 각주 대신 본문에 병기하는 방주를 넣었다. 이밖에 각종 병장기의 컬러 도해, 주요 등장인물, 권영민 김용택 유홍준씨 등 문화계 주요 인사들이 쓴 ‘내가 읽은 삼국지’ 칼럼, 컬러 사진을 곁들인 삼국지 현장의 유적 소개, 소설에 등장하는 고사성어 해설 등을 모두 묶어 ‘즐거운 삼국지 탐험’이라는 별책부록도 준비했다.
원전에 등장하는 210수의 한시를 모두 번역해 실은 것도 황석영 삼국지의 특징이다. 황씨 특유의 화려한 문장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전투장면도 매력이다. 그는 “나름대로의 신명을 얹어 좀더 박진감있게 표현하려 했고, 과거형이 아니라 눈앞에서 진행되는 듯 느낄 수 있도록 현재형 문장으로 다듬기도 했다”고 말했다.
황씨는 “지금까지 삼국지의 크고작은 번역본이 50권이 넘는데 나까지 나서자니 쑥스러웠다”면서도 “안경을 두 번이나 바꿨을 만큼 눈에 무리를 하면서까지 집필에 공을 들였다”고 자신이 들인 정성을 강조했다.
황씨는 삼국지 주인공들의 해석과 관련, 민중의 영웅, 또는 역사적으로 정통성을 부여받은 조조보다는 중국 민초들에 의해 영웅으로 탄생한 유비 삼형제에 무게를 두었다.
그는 “일본에서 나온 삼국지는 조조를 높이 평가하는 경향이 있고, 우리 번역본 중에도 은근히 그런 시도를 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며 “그러나 민초들은, 유비가 극도로 불리한 상황에서도 의리를 지키느라 여포에게 시달리고, 한중 파촉을 단번에 차지할 기회를 대의명분 때문에 거절하는 것, 그리고 관우가 조조의 간곡한 만류를 뿌리치고 적장을 베어가며 유비에게 돌아가는 과정 등 인간에 대한 신의를 더욱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해석했다.
<< 이문열 장정일 이어 황석영도… 삼국지의 '삼국지' >> [동아일보 / 유윤종기자]
<장길산> <객주> <오래된 정원>의 작가 황석영(60.사진)이 창작과비평사에서 자신의 이름을 단 <삼국지>를 냈다. 전 10권.
청소년용, 어린이용, 만화 등을 제외하고서도 이미 <이문열 평역 삼국지> 등 10여종이 경쟁해온 국내 ‘삼국지’ 시장 판도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방북사건으로 수감 중이던 97년 번역을 시작했죠. 교도소에 ‘집필할 권리’를 빼앗긴 시절이었는데, 번역만은 허락하더라고요. 베를린에 살 때 그곳 학생들이 로마 고전을 라틴어로 술술 읽는데 충격이랄까 자극을 받기도 했고, <장길산>을 쓰면서 익혀둔 고전강독 지식도 잊어가던 터라 잘됐다 싶었습니다. 출옥 후 신문 연재소설 등에 매달리다 보니 조금 늦어졌어요.”
그의 고정팬들은 <장길산>에서 보여준 발랄하고 장쾌한 입심이 삼국지에서 어떻게 ‘황석영류’로 전개되는지 궁금할 듯하다. 그러나 그는 의외로 ‘원전(原典)에 충실하는 데’ 작업의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박태원판 <삼국지>를 처음 읽었지요. 중국어 원본을 꽤 충실히 번역한 판본이었죠. 그 뒤 수많은 삼국지를 읽었지만 ‘박태원판만 못하다’는 생각을 쭉 갖고 있었어요. 여러 작가들이 자신들의 관점과 해석에 맞춘 삼국지를 내놓고, 그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지만 지금은 다시 ‘고전의 맛’으로 돌아갈 때라고 생각했어요.”
번역의 줄기가 되는 원서도 꼼꼼히 골랐다. 1970년대 이후 지금까지 국내 번역본들은 대개 대만 삼민서국(三民書局)에서 나온 <삼국연의>를 원본으로 삼았지만 그는 1999년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나온 <수상(수像)삼국연의>를 원본으로 했다. <수상삼국연의>는 청대에 나온 ‘모종강본’ 삼국지의 번잡한 가필을 바로잡고 명대 나관중의 원본에 가장 가깝게 다가간 판본으로 꼽힌다. 성균관대 임형택 교수의 도움으로 원문에 실린 한시도 빠짐없이 번역 수록했다.
“의고체 문장을 버리고 정확하게 번역하는 데 힘썼지만 그렇다고 직역만 한 건 아니에요. <삼국지> 원본의 전투장면은 매우 ‘드라이’해서 ‘한방에 피떡이 되어 나가떨어졌다’하고 끝내는 식이니까요. 그래서 전투장면은 내 스타일로 실감나게 써봤죠. 꽤 재미가 있을 겁니다.”
그는 <삼국지>를 번역하다 보니 사고방식도 바뀌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역사는 ‘큰 선’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안달복달하지 않게 됐다고 할까요. 전에는 나름의 기준에 따라 나쁜 놈이다 좋은 놈이다 하고 사람을 재단했는데, 삼국지에 매달리고 나니 사실 사람과 가치들 사이에 ‘큰 차이’는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 황석영씨, 6년만에 <삼국지>내 >> [중앙일보 / 신준봉기자]
소설가 황석영(60)씨가 감옥에 있던 1997년부터 번역하기 시작한 <삼국지>(창작과비평사)가 6년여 만에 10권의 책으로 출간됐다.
'황석영 삼국지'의 가세로 '이문열의 삼국지' 등 수많은 종이 나와있는 국내 삼국지 독서 시장이 한층 뜨거워질 전망이다.
황씨는 25일 자신의 삼국지가 "중국 본토에 가장 널리 보급돼 있는 인민문학출판사본을 원본으로 삼았기 때문에 삼국지의 원저자 나관중본에 가장 충실한 번역 작품일 것" 이라고 말했다.
기존 국내에 소개돼 있는 삼국지 번역본들이 나관중 원본의 정확성을 훼손하고 오류가 빈번한 청대 모종강본을 원본으로 삼은 것과는 차별화된다는 것이다.
또 "원문의 값어치를 고스란히 살린 정역(正譯)이지만, 주요 전투 장면에서는 건조한 원문에 나름의 신명을 얹어서 박진감 넘치게 표현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이번 <삼국지>는 한시 2백10수를 고스란히 담아 중국 장회(章回)소설의 특징을 살린 점, 중국 고대 인물화의 권위자인 왕훙시 화백의 채색 삽화 1백20점을 집어넣은 점도 특색이다. 소설은 황씨의 초고를 우석대 전홍철 교수가 원문과 대조해 바로잡고, 한시는 성균관대 임형택 교수가 교정했다.
<< 민중의 꿈·소망… 새로 읽는 삼국지 >> [국민일보 / 정철훈기자]
<황석영 삼국지>가 7년여에 걸친 작업 끝에 창작과비평사에서 출간됐다. 이로써 기존 삼국지 시장을 평정한 <이문열 삼국지>(민음사)와 맞대결을 벌일 것임은 불문가지. 여기에 <장정일 삼국지>가 이르면 올 연말 김영사에서 선보일 계획이어서 출판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황석영 삼국지>는 그간의 국내 ‘삼국지’ 번역본들의 오류를 잡아낸 것은 물론 원전의 역사의식을 충실히 살리고 한시들을 빠짐없이 수록해 고전의 참맛을 느낄 수 있도록 한 점이 특징. 또한 중국 고대인물화의 권위자 왕훙시(王宏喜) 화백의 컬러삽화 150여장을 수록,나관중 원전의 그림전통을 현대적 감각으로 되살렸으며 주요 전투와 사건 전개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35장의 지도를 그려넣었다. 또 각권 앞에는 주요 무대가 되는 후한 말기 중국대륙의 지도와 권별 주요 등장인물 설명을 그림과 함께 실었고,본문 중에 방주를 넣어 알찬 고전 이해를 도왔다.
황씨가 ‘삼국지’ 번역을 시작한 것은 방북사건으로 수감중이던 1997년 무렵으로 세르반테스와 단테가 옥중에서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던 일화를 되새기며 2권 분량의 번역을 옥중에서 마무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황석영 삼국지>는 1300년대 원말(元末) 명초(明初)의 소설가 나관중의 ‘삼국지’를 원문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실패한 영웅의 일대기임을 부각하고 있다. 나관중은 정사(正史)인 진수(陳壽)의 ‘삼국지’를 소설화하면서 정사의 시각에 반하는 내용으로 변환시켰던 것. 원의 지배체제에 항거하는 농민봉기에 가담한 나관중의 이력을 고려할 때 그가 당대 민중들과 더불어 추구하려 했던 가치는 실패한 영웅을 내세워 집단적인 열망을 투영하는 역사적 흐름 가운데 자리잡고 있으며,이는 옮긴이 황석영의 역사의식과 맞닿는 지점이기도 하다.
황씨는 “일본에서는 오히려 조조를 높이 평가하는 경향이 있으며 우리 번역본 중에도 은근히 그런 시도를 하는 경우가 없지 않은데,이는 패권과 현실에서의 힘을 추구하는 가치관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나는 이러한 현대적 해석보다는 백성들의 보편적인 염원을 훨씬 중요하게 여기는 축이다”고 말했다. 무엇보다도 ‘황석영 삼국지’는 1999년 샹하이 강소고적(江蘇古籍)출판사에서 출간한 ‘수상삼국연의(?廠잘꽤亘卵？’를 원본으로 삼았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이 판본은 샹하이 인민문학출판사의 간체자 판본(초판 1953년)을 번체자로 바꾼 것으로,현재 중국에서 가장 신뢰할 만한 텍스트로 평가받고 있다.
반면 70∼80년대 출간된 국내 번역본들의 대만 삼민서국에서 나온 ‘삼국연의’를 원본으로 삼은 것으로 이 판본은 모종강본(명대 나관중의 원본을 청대 모륜·모종강 부자가 독자들의 구미에 맞춰 수정한 판본)을 저본으로 삼은 것이다. 모종강본은 이후 300여년간 큰 인기를 끌었으나 나관중의 원본이 가진 정확성을 상당히 훼손한 채 삼민서국판까지 이어져 왔다. 그런데도 이 판본이 국내 번역본들의 원본이 되어온 것은 1992년까지 한·중수교가 이루어지지 못한 정황 때문이기도 했다.
황석영은 원문의 간결하고 객관적이며 냉정한 사실적 문체의 특성을 최대한 살리면서 주요한 전투장면 등에서는 나름의 신명을 얹어서 박진감있는 묘사를 덧붙이고 있다. 문학평론가 최원식씨는 “관우와 장비를 잃은 슬픔에 나라를 책임진 지도자의 위치를 망각하고 끝내 작은 의리에 매여 무모한 복수전으로 죽음에 이르는 유비의 말년이야말로 삼국지의 압권이며 유비는 아름다운 실패속에 역사에서 퇴장한다는 점에서 삼국지의 진정한 주인공은 시간 또는 역사”라고 말했다.
출간에는 각 분야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았다. 우석대 전홍철(全弘哲) 교수가 간체자·번체자 텍스트의 대조·교열작업을 맡았고,성균관대 임형택 교수가 한시 번역을 감수하여 텍스트의 완성도를 높였다. 별권 부록 ‘즐거운 삼국지 탐험’에는 30명의 주요 등장인물의 간략한 일대기를 소개했으며,중국 현지의 삼국지 관련 유적과 무장들이 사용한 각종 병장기 등도 컬러삽화와 함께 수록했다.
<< 삼국지 '옛맛' 온전히 살렸죠 >> [경향신문 / 김대진기자]
필력 40년. 아직도 쓸 것이 산더미 같다는 천부적인 이야기꾼 황석영씨(60)가 동양의 대표적 고전 ‘삼국지’(전 10권)를 창작과비평사를 통해 번역·출간했다. 동시에 출판계와 서점가는 과연 황석영의 ‘삼국지’가 지난 1세기 동안 가장 많이 팔린 책으로 기록된 이문열 ‘삼국지’(1988년 초판 발행 이후 약 1천3백만부 판매)의 아성에 영향을 미칠 것인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황석영의 ‘삼국지’는 이미 사전예약판매제를 통해 1주일 사이 600질 이상이 팔려 출판계에 만만치 않은 파장을 예고했다.
황씨는 25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괜히 남의 것에 대해 이런 저런 말을 하고 싶지 않다”면서 “하지만 나의 ‘삼국지’가 후대에도 원전 텍스트처럼 활용되기를 희망한다”는 말로 이번 번역본에 대한 자신감과 기대감을 표시했다.
작가가 ‘삼국지’ 번역에 뛰어든 것은 무엇보다 기존 번역본에 대한 불만족 때문이었다. 그는 책 서문에서 “어떤 역본은 너무 원문대로를 고집한 나머지 직역에 그쳐 은유와 인용이 엉뚱하게 해석됐고 어떤 역본은 여러 사람이 나누어 일을 하다보니 앞뒤 인물이나 장소의 이름이 서로 다르기도 하고 문체가 바뀐 경우도 있었다. 시의 경우에는 더욱 심해서, 아예 빼버린 역본도 있고 실었다 하더라도 번역이 틀리거나 오자·탈자가 많고, 인용된 고사를 자연스럽게 반영하지 못한 것이 대부분이었다”고 밝혔다.
작업을 시작한 것은 방북과 망명 뒤 감옥살이를 하던 1997년. 당시 창작은 법적으로 금지돼 있었지만 번역은 허락을 받았다. 감옥에서의 작업은 그에게 새로운 의지를 심어줬다. 그는 “세르반테스가 전쟁에 참전했다가 포로가 돼 터키의 감옥에서 ‘돈키호테’를 집필했다거나, 단테가 감옥에서 ‘신곡’을 썼다던가 하는 일화를 되새기려 번역에 몰두했다”고 밝혔다.
이후 총 7년간 황씨는 나빠지는 시력 때문에 안경을 두 번이나 바꾸면서 번역을 완성했다.
황석영 삼국지의 가장 큰 특징은 ‘원전에 충실하다’는 것. 작가는 “독자가 나름의 가치관에 따라 고전을 해석하고 비판·재창조하는 교육적인 효과를 고려했다”면서 “‘삼국지’라는 동양의 고전을 통해 어느새 사라져버린 동아시아 사람들의 세계관·인간관을 되살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옛맛’을 살려주는 원전의 ‘시(詩)’를 그대로 살려 수록한 것도 차별점이다.
이번 번역본은 황씨가 그의 소설 ‘장길산’ 이후 다시 한자 공부의 매력에 빠져들면서 번역한 것을 우석대 전홍철 교수(원전과 비교·대조해 교열)와 성균관대 임형택 교수(시 퇴고 및 번역)가 매만져 완성했다. 철저히 원전에 충실하고자 한 것이 기본 방향이지만 전투 장면 등에서 황씨 특유의 재담과 묘사력을 살려 긴장감을 더했다. 여기에 중국 고대인물화의 권위자 왕훙시 화백의 삽화 150여장을 실어 또 하나의 감상포인트를 제공한다.
번역에 참고한 것은 정음사판 삼국지(소설가 박태원 번역)와 영창서관 발행의 ‘현토 삼국지’. 감옥에서 나온 이후에는 99년 상하이(上海) 강소고적(江蘇古籍) 출판사의 "수상삼국연의"를 원전으로 본격적으로 작업했다.
황씨가 말하는 ‘삼국지’의 묘미는 볼 때마다 새롭다는, 그래서 다양한 해석과 적용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그는 서문에서도 밝혔듯이 “삼국지에서 어떤 이는 정의와 의리를, 어떤 이는 권모와 술수를, 그리고 어떤 이는 경영과 처세를 읽을 것”이라며 “나 역시 읽을 때마다 나의 처한 사정과 나이에 따라 느낌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삼국지를 읽으면 인생이 허무해진다’는 말이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 또 현재의 작은 차이로 남을 헐뜯고 비판하기보다 좀 더 큰 역사의 흐름에서 세상을 바라볼 것 등을 배울 수 있다”고 덧붙였다.
조선시대부터 대중적 인기를 누려온 삼국지는 해방 이후 수많은 번역본이 출간됐다. 이중 박종화와 김구용이 번역한 삼국지가 대표적으로 꼽히는데 88년 이후에는 이문열의 ‘삼국지’가 시장을 평정한 상태다.
<< 민중의 꿈 녹아있는 원전에 충실 >> [한국일보 / 김지영기자]
난리통에 대구로 피난 간 초등학생은 종종 반 친구들 앞에 나서서 이야기를 들려줬다. 세 호걸이 도원에서 잔치하면서 의형제를 맺는 것으로 시작됐다. 어찌나 재미있게 얘기했던지 전교에 유명해져서 다른 반 아이들이 몰려왔다. 25일 서울 인사동에서 만난 소설가 황석영(60)씨는 “전쟁 중에 아이들에게 삼국지 이야기를 해주던 때가 이야기꾼으로서의 내 전성기였을 것”이라면서 웃었다.
황씨가 옮긴 나관중의 ‘삼국지’ 전 10권으로 창작과비평사에서 출간됐다. 방북사건으로 옥살이를 하던 1997년 면회 온 문인들의 권유로 “수감 생활의 고달픔을 이기려고 시작했던 작업”이다. 꼬마 이야기꾼의 밑천이었던 ‘정음사판 삼국지’(박태원 역)를 구해달라고 부탁했다. 박종화의 ‘월탄 삼국지’도, 이문열 평역 ‘삼국지’도 받았다. 여러 번역본을 비교하면서 읽다가, 원문의 맛과 결을 살리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다.
그는 옥중에서 원고지 2,500매 분량으로 우리말로 옮겼다. 감옥에서 나와선 작업이 조금 더뎌졌다. “소설 창작을 재개하면서 번역 작업을 함께 한다는 게 쉽지 않았다. 지치기도 했다. 그런데 번역 후반부에 들어서자 꼭 마쳐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더라. 여러 가지 번역본을 보면서 ‘삼국지 표준판’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석영 삼국지’를 ‘표준 삼국지’로 삼는다는 목표를 세웠다.”
황씨가 원본으로 삼은 것은 1999년 상하이(上海)에서 출간된 판본이다. 그는 ‘원전에 충실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사실적ㆍ객관적인 문체의 특성을 살리되, 원문에서는 밋밋하고 간략하게 묘사된 전투 장면에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황석영 삼국지’에서 장수들은 한순간 한순간 목숨을 걸고 전투한다.
펄펄 살아서 천하를 호령한다. 이야기 중간중간 삽입된 한시(漢詩) 210수가 원문과 함께 번역 수록됐다. 임형택 성균관대 교수가 한시 번역을 감수했고 전홍철 우석대 교수가 텍스트 교열 작업을, 중국 화단의 원로 왕훙시 화백이 삽화를 맡았다.
무엇보다 황씨가 ‘표준’으로 내세우는 것은 원본의 역사 의식이다. 한중 파촉을 대번에 차지할 수 있었음에도 유비는 대의명분 때문에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가까스로 기반을 마련한다.
관운장은 온갖 영예를 뿌리치고 조조를 떠나 필마단기(匹馬斷騎)로 다섯 장수의 목을 베면서 유비를 찾아간다. 제갈량은 유비와의 약속 때문에 어리석은 유선을 보필하다가 위나라 정벌을 떠나기에 앞서 출사표(出師表)를 올린다. 유비 관우 장비와 제갈량은 인덕과 의리를 추구했지만 실패하고 좌절했다.
황씨는 이 실패한 영웅들의 이야기에서 구원을 바라는 백성의 염원을 보았다. 새로운 세상을 바라는 민중의 꿈과 소망을 보았다. 그는 집필 내내 1970, 80년대 한국일보에 역사소설 ‘장길산’을 연재하던 때가 생각났다고 했다. ‘장길산’은 분단시대, 유신시대에 씌어진 작품이다.
그는 “소설에 그려진 시대가 아니라 작가가 어느 시대에 썼는가 하는 것이 역사소설의 의의”라면서 “작가의 글을 읽는 당대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며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가 중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보기에 오늘날 쓰여지는 중국 호걸들의 이야기의 의의는 근대 이후 잊혀진 동양적 가치의 회복이다. 그는 “황석영 삼국지가 동양 문명의 뿌리를 회복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베스트셀러로 꼽히는 이문열씨의 ‘삼국지’가 의식되지 않느냐는 질문이 던져졌다. 그는 “맥주도 생맥주, 흑맥주 등 종류가 다양하지 않느냐. ‘삼국지’도 옮긴 사람에 따라 읽는 맛이 달라지는 것”이라면서 “그보다 ‘삼국지’라는 텍스트가 이토록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 의해 옮겨져 온, 끈질긴 생명력을 갖고 있다는 게 놀랍다”고 말했다.
15일 시작된 인터넷 서점 예약 판매 부수는 열흘 만에 벌써 800질을 기록했다. 유례 없이 뜨거운 반응이라고 출판사는 전한다. 황씨는 “10월께 한국일보 연재 중인 ‘심청, 연꽃의 길’을 단행본으로, 10권 분량의 ‘청소년 장길산’을 낼 것”이라면서 “그 후 ‘열국지’를 옮겨볼까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 <삼국지> 펴낸 소설가 황석영 >> [대한매일신문 / 이종수기자]
“옥살이 하던 97년 시인 이시영과 평론가 최원식 등 후배들이 삼국지 번역을 해보라고 권했습니다.세르반테스와 단테가 ‘돈키호테’와 ‘신곡’을 집필하게 된 배경과 일화를 떠올리며 번역했습니다.”
발간 전부터 화제를 모은 황석영의 <삼국지>(창작과비평사)가 세상 속으로 나왔다.25일 서울 인사동에서 작가를 만나 옥중에서 쓴 2권을 포함,10권에 쏟은 7년이 넘은 가슴앓이를 들었다.
** 97년 옥중 번역 시작… 7년 가슴앓이
황석영은 삼국지를 어떻게 썼을까.이미 일제 강점기 박태원이 쓴 삼국지를 판본으로 한 정음사의 삼국지,박종화의 삼국지,1200만부가 팔렸다는 이문열의 삼국지,문화일보에 연재 중인 장정일의 삼국지 등 10여종이 나와 궁금증이 더했다.
“원문에 충실했다는 것입니다.이시영,한나라당 김홍신 의원,이문열씨 등 면회온 분들에 부탁해 구할 수 있는 판본은 다 읽었습니다.그런데 초등학교 5학년 때 읽은 박태원이 쓴 삼국지 맛이 온전히 살아 있는 것이 없더라고요.심지어 누락되거나 오탈자로 인한 오역도 보였고요.특히 한시(漢詩)의 왜곡이 심해 신경을 가장 많이 썼습니다.”
오역의 모태는 원전이다.이를 위해 황석영은 1999년에 상하이 강소고적(江蘇古籍)출판사가 낸 ‘수상삼국연의’를 원본으로 삼았다.이 판본은 우리나라 삼국지의 원본인 타이완 삼민서국(三民書局) 출판사의 ‘삼국연의’의 오탈자를 바로잡는 등 원문에 가깝게 간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고 딱딱할 것이라고 지레 짐작할 필요는 없다.황석영은 “직역이나 고어투가 주는 어색함을 최대한 줄였다.특히 결투 장면은 ‘삼합이면 피떡이 돼 개구리처럼 뻗는’ 원전의 단조로움을 보충하고 실감나게 분위기를 살리는데 애먹었다.”고 설명했다.
‘장길산’ ‘무기의 그늘’에서 보여준 민중 지향의 세계관을 투영했는지도 관심이다.그는 “일본이나 우리 번역본이 조조를 높이 평가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패권주의와 현실에서의 힘을 추구하는 가치관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실패하기는 했지만 백성들의 보편적 염원을 중요하게 여긴 유비 3형제나 제갈 량 등 인의(仁義)를 지킨 영웅’의 이야기에 무게를 둔 원본의 관점을 지지했다.”고 말했다.그는 “삼국지의 70%만 사실이고 나머지 30%는 덧붙여진 글이라고 하는데,30%를 구축해온 민중의 눈에 의미를 두었다.”고 덧붙였다.
** `고전정신·역사의식´ 전해주고 싶어
번역을 하다보니 다른 기대감도 생겼다고 한다.기존 번역본을 보완하고 감옥의 답답함을 이긴다는 개인적 목적은 ‘고전 정신과 역사 의식’에 대한 책임감으로 넓어졌다.“갈수록 고전 그대로의 정신과 역사 의식을 전해 주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생겼습니다.젊은이에게 고전의 정신이야말로 무한한 재생산의 보고이기 때문입니다.아울러 정체성을 잃어가는 시대에 동양의 고전을 통해 동아시아인의 세계관과 인간관’을 현대 무대에 불러오고 싶었습니다.”
번역을 하느라 “안경을 2개나 바꿀 정도로 시력이 나빠졌다.”는 황석영은 “『장길산』 때의 한문 내공이 회복된 것 같아 ‘발동’이 걸린 김에 ‘열국지’도 번역해 볼까 한다.”고 열정을 보였다.
<< 황석영 삼국지는? >>
** 원전에 충실
전홍철 우석대교수가 간체자·번체자 텍스트를 엄격하게 비교 교열했다.한시 번역은 임형택 성균관대교수가 감수했다.황씨가 “처음엔 번역한 뒤 수정을 부탁했는데 내공이 달려서 후반부는 아예 임 교수에게 번역을 맡겼다.”고 말했다.이런 저런 방식으로 6∼7차례 원본과 비교작업을 거쳤다.
** 현장감 재생
‘홍루몽’ 등의 삽화를 그린 중국 화단의 원로 왕훙시(王宏喜)화백의 컬러삽화 150여장을 수록하여 중국의 그림 전통을 현대 감각에 맞게 옮겼다.또 주요 전투와 사건 전개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35장의 지도도 덧붙였다.아울러 가이드북 성격의 ‘즐거운 삼국지 탐험’을 별권 부록으로 보탰다.
** 다른 삼국지는?
10여종 나왔으나 거의 절판되었고 민음사의 이문열 삼국지와 문화일보에 연재중인 장정일 삼국지(김영사 출간 예정)가 있다.이문열 삼국지는 평역이라 작가의 주관이 많이 녹아있는데 ‘영웅사관에 입각한 마키아벨리즘에 따른 해석’이 강하다는 평을 듣는다.한편 장정일 삼국지는 ‘중화사상 배제’에 무게를 두고 있다.
<< 황석영 <삼국지> 나왔다 >> [문화일보 / 김영번기자]
출판계에 소문이 무성하던, 소설가 황석영씨의 삼국지가 드디어 선을 보였다. 25일 출간된 <황석영 삼국지>(창작과 비평사·사진)는 총 10권에 부록으로 각종 병장기 등을 설명한 ‘즐거운 삼국지 산책’이 붙어 있다. 기존 삼국지 시장을 평정했던 <이문열 삼국지>(민음사)에 강력한 라이벌이 등장한 것이다.
<황석영 삼국지>의 특징은 한마디로 ‘정본’을 바탕으로 했다는 것. 책을 펴낸 출판사 측은 기존에 나온 삼국지들이 일본판 내지 대만판을 바탕으로 한 데 비해 <황석영 삼국지>는 중국 상하이(上海) 강소고적 출판사와 인민문학출판사 등에서 발간된 ‘정통 원전’을 근간으로 한, 가장 충실한 삼국지라고 자평하고 있다. 특히 작가인 황석영씨가 소설 <장길산>등에서 보여준 ‘솜씨’에다 임형택(성균관대) 교수등 관련학자들의 상세한 도움말까지 가미된 작품이라 출판시장에서 만만찮은 경쟁력을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다. 게다가 210수에 달하는 한시(漢詩)를 번역, 시어의 맛을 살려 수록한 데다 중국 고대인물화 부문의 권위자 왕훙시(王宏喜) 화백의 섬세한 컬러삽화 150여장을 곁들인 것도 자랑거리다.
황석영씨는 책 서문에서 “일본에서는 오히려 조조를 높이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며 “때로는 그를 중심으로 ‘삼국지’의 기본 줄거리를 전개하는 작품도 있으며, 우리 번역본 중에도 은근히 그런 시도를 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고 밝혔다. 조조 중심의 영웅사관을 바탕에 깔고 있는 ‘이문열 삼국지’를 빗댄 대목이다. 황씨는 또 “삼국지가 논술고사 시장과 만나면서 청소년들이 많이 읽게 됐다는 소문”을 들었다며 “고전은 무엇보다도 원문대로 전달되어야 한다”고 삼국지 번역의 의도를 밝혔다.
황씨가 ‘또 하나의’ 삼국지를 내게 된 데는 사연이 있다. 북한 방문으로 인해 지난 97년 옥살이를 하고 있던 작가에게 시인 이시영씨와 문학평론가 최원식(인하대) 교수 등이 찾아와 ‘삼국지 번역’을 넌지시 권했다. 이에 솔깃한 황씨는 기존 번역판에 대한 검토에 들어가 박태원의 삼국지(정음사·1955) 등을 구해 읽었으나 일화도 생략돼 있고 시도 삭제된 것이 많아 아쉬움이 많았다고 한다. 번역을 결심한 황씨는 일제시대에 널리 읽혔던, 영창서관 발행의 <현토 삼국지>등 갖가지 판본 독해에 들어갔다. 이후 출옥하자마자 본격적인 번역에 들어가 무려 7년에 걸친 작업 끝에 <황석영 삼국지>가 나오게 된 것이다.
황씨가 삼국지 번역에서 가장 역점을 둔 것은 문체. 전투장면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것이 관건이니 만큼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원전의 느낌을 어떻게 전달하느냐는 것이 무엇보다도 신경쓰이는 대목이었다. 황씨는 이에 대해 “주요 전투장면에서는 건조한 원문에다 나름대로의 신명을 얹어서 좀더 박진감있게 표현하려고 덧붙여 묘사하기도 했다”며 “지금 바로 눈앞에서 진행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려고 현재형 문장으로 다듬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 민중 함께한 영웅의 좌절 그것이 바로 삼국지 본류 >> [한겨레신문 / 김은형기자]
올해 출판계 최대 이슈 가운데 하나인 황석영(60) 번역의 <삼국지>(창작과비평사·전10권)가 출간됐다. ‘삼국지’와 ‘황석영’이라는 단어의 결합만으로 독자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한 이번 출간은 지금까지 1400만 부나 팔리며 국내 <삼국지> 시장을 평정한 이문열 평역 <삼국지>(민음사)와 벌이게 될 시장 대결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번에 나온 <삼국지>는 무엇보다 원본에 충실한 번역임을 강조한다. 방북 망명 뒤 옥살이를 하며 황씨는 <삼국지> 번역을 구상하게 됐다고 한다. 22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황씨는 “지인들이 감옥에 가져다준 여러가지 기존의 번역본을 비교·검토해보니 번역의 오류나 오·탈자 문제가 너무나 많아 표준이 될만한 고전을 소개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번역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때 청소년 잡지 <학원>에 연재된 김용환의 <코주부 삼국지>를 통해 <삼국지>를 처음 접하고 성장하면서 박태원의 정음사판 삼국지와 박종화의 월탄 삼국지 등을 섭렵했다는 황씨는 “수십여 종의 삼국지와 국내 출간됐지만 원전에 충실한 번역본이 없다는 게 안타까웠다”고 덧붙였다.
<< 원전에 충실 ‘조조 띄우기’경계 >>
이번 번역본은 1999년 중국 상하이 강소고적판사에서 펴낸 <수상삼국연의>를 원본으로 했다. 이 판본은 종래 우리나라에서 나온 모든 <삼국지> 번역본의 원본이었던 대만 삼민서국출판사의 <삼국연의>에서 오·탈자를 바로잡아 간행한 것으로 현재 중국에서 가장 신뢰할 만하다는 평을 얻고 있다.
내용면에서 황석영 <삼국지>는 영웅호걸들의 이야기가 ‘민중작가’의 펜끝에서 어떻게 해석될까하는 궁금증을 일으킨다. 황씨는 나관중 원작의 <삼국지>가 위나라를 정통으로 삼았던 진수의 정사와 달리 당시 몰락해 가던 촉한을 정통으로 삼았던 점을 강조한다. “정사와 배치되는 나관중의 정치적 입장은 <삼국지>는 당대 민중들과 더불어 추구하려 하던 가치가 무엇인지 보여준다”며 “의를 추구했지만 실패하고 좌절한 영웅들의 이야기는 시대로부터 외면당한 민중들의 소망을 투영하고 있다”고 <삼국지> 원전의 민중성을 끌어냈다.
<< 한시번역 전문가 힘 빌려 >>
또한 황씨는 ‘옮긴이의 말’에서 조조를 높이 평가하는 일본의 경향을 따라 “우리 번역본 중에도 은근히 그런(조조를 중심으로 기본 줄거리를 전개하는) 시도를 하는 경우가 없지 않은데, 이는 패권과 현실에서의 힘을 추구하는 가치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비판해 조조를 긍정적으로 해석한 이문열 평역 <삼국지>를 은근히 비판하기도 했다.
이야기 중간에 삽입된 한시 총 210수는 역자가 특별히 공들여 작업한 부분. 황씨는 “삽입된 시들이 이야기의 흐름에 매우 중요함에도 기존 번역본들에서는 아예 빠져 있거나 거칠게 번역돼 본래 시의 역할을 복원하는 데 중점을 두었으며 내 한문실력에 한계를 느껴 한시 전문가인 임형택 교수(성균관대)가 많은 부분 교정했고 후반부는 직접 번역에 나서기도 했다”고 밝혔다. 또 원전에서는 건조하게 묘사된 전투장면은 작가 특유의 힘있는 문체를 통해 원전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이야기의 생동감을 보태는 데도 신경을 썼다고 덧붙였다. 중국 고대인물화의 권위자인 왕훙시 화백의 컬러삽화 150여 장 역시 출판사가 내세우는 황석영 <삼국지>의 특별한 매력이다.
<< 전투장면은 특유의 힘 살려 >>
전집에 수록된 별책부록 <즐거운 삼국지 탐험>에는 등장인물과 주요 전투에서 사용했던 병장기, 삼국지 현장 등의 화보와 삼국지 고사성어 해설이 담겨있다. 지난 16일부터 인터넷을 통한 사전예약판매제를 실시해 지금까지 800질이 사전 판매된 상태다.
<< 황석영의 <삼국지> >> [한국경제신문 / 김재창기자]
작가 이문열씨가 장악해 온 소설 "삼국지"시장에 황석영씨가 도전장을 던졌다.
창작과비평사는 최근 작가 황석영씨가 6년여의 준비끝에 내놓은 "삼국지"(전10권,별권 부록)판매에 들어갔다.
이에 따라 지난 88년 나온 이후 삼국지 시장을 거의 평정하다시피 해온 이문열 "삼국지"(민음사,전10권)와 정면대결이 불가피하게 됐다.
이문열 "삼국지"는 출간 이후 지금까지 모두 1천5백만부가 팔려나간 초대형 베스트셀러로 민음사의 대표적인 효자상품이다.
이 책 하나만으로 민음사가 올린 매출액만 약 5백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에 맞서는 황석영 "삼국지"도 초반부터 독자들의 높은 관심을 얻고 있다.
출간에 앞서 지난 16일부터 교보와 영풍문고,예스24,알라딘등에서 실시중인 예약 이벤트에서만 1천2백질(1만2천권)이 팔리며 일찌감치 올 여름 출판가의 태풍으로 등장할 조짐이다.
황석영 삼국지는 원전에 충실한 점이 특징이다.
기존 삼국지가 일본판이나 대만판을 바탕으로 한 데 비해 황석영판은 중국에서 발간된 "원전"을 근간으로 쓴 가장 충실한 삼국지라는 것이 창비쪽의 설명이다.
2백10수에 달하는 한시들을 빠짐없이 수록,고전의 참맛을 느낄 수 있도록 한 점도 주목된다.
안경을 두번이나 바꿨을 만큼 눈에 무리를 하면서까지 집필에 공을 들였다는 황씨는 "고전 그대로의 정신과 역사의식을 전해주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일했다."고 말했다.
<< 당대 민중들의 꿈과 소망이 녹아들어 있는 고전 <삼국지> >>
<삼국지>의 줄거리는 원래 정통역사서에서 출발해 여러 시대에 걸친 민중들의 구전설화와 재담, 연희·연극 등의 공연예술, 작가·문인들의 창작이 덧붙여져서 이루어진 것이다. 열 중에 일곱이 사실이라면 나머지 셋이 지어낸 이야기라고 한다. 이 나머지 셋이야말로 각 시대를 통해 끈질기게 이어져내려온 민중들의 꿈과 소망이 반영되어 있는 부분이며, 어떤 의미에서는 사실보다 더욱 중요한 역사의식이다. 특히 원작자인 나관중의 정치적 입장은 당대 민중의 인의론(仁義論)과 한족 정통성에 근거를 둔 것이었다. 일설에 의하면 나관중은 이민족 원나라에 항거하는 농민봉기에도 가담했으며, 그 지도자 중의 한 사람인 장사성(張士誠)과도 관련이 있다고 한다. 여기서 우리는 천하통일의 기초가 된 조조의 위나라보다 유비의 촉한을 중심으로 줄거리가 서술되고 있는 당연한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 조조는 귀족이었고 손권도 강남 명문제후의 후손이었지만, 촉한의 유비·관우·장비는 물론 제갈량까지도 당대 백성들과 거의 같은 몰락한 선비거나 지방 무뢰배에 지나지 않았다. 유비가 극도로 불리한 상황에서도 의리를 지키느라고 여포에게 여러 차례 시달린다든가, 세력의 근거지가 될 한중땅을 단번에 차지할 수 있는데도 도덕적 대의명분 때문에 우여곡 절을 겪으면서 가까스로 기반을 마련하는 과정을 보면 <삼국지>가 당대 민중들과 더불어 추구하려 했던 가치가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다. 관운장이 온갖 영예를 뿌리 치고 조조를 떠나 필마단기로 유비를 찾아가는 과정이나 선주 유비와의 약속 때문에 어리석 은 유선을 보좌하다가 위나라 정벌을 떠나기에 앞서 제갈량이 '출사표'를 올리는 대목 등에 서 우리는 뜨거운 감동과 함께 눈물에 젖는다. 그러나 인덕과 의리를 추구한 유비 삼형제와 제갈량 등의 촉한은 실패한다. 의(義)를 추구했지만 현실에서 실패하고 좌절한 영웅을 기리는 백성들의 풍조는 동서고금이 다 같은데, 일본에서는 오히려 조조를 높이 평가하는 경향이 있고, 때로는 그를 중심으로 <삼국지>의 기본 줄거리를 전개하는 작품도 있다. 이는 패권과 현실에서의 힘을 추구하는 가치관에서 비롯한 것이다. 나는 저러한 이른바 ‘현대적 해석’에 대해서 백성들의 보편적인 염원을 훨씬 중요하게 여기는 축이다. 따라서 나는 원본의 관점과 흐름에 적극 찬동했고, 이것이 유년 시절부터 지금까지 나의 <삼국지>에 대한 일관된 애정의 원천이기도 하다.
고전은 무엇보다도 원문대로 전달이 되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누구나 그것을 읽고 나름대로의 가치관에 따라 해석하고 비판하고 재창조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젊은이들에게는 고전의 정신이야말로 무한한 재생산의 보고이다. <삼국지>의 형성과정이 그렇듯이, 천여년 동안 여러 시대와 나라를 거치면서 투영된 당대 백성들의 소망이며 꿈은 역사적으로 존중되어야 마땅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