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가 한 주제에 대한 집중적 탐구와 글쓴이의 방법적 판단 체계를 담고 있는 글이라 정의내려질때 이 책은 바로 그런 의미에서 온전한 에세이의 틀을 갖추고 있다. 지은이 송상일은 '국가'와 '황홀'로 대표(이 글의 표현으로는 '제유')되는 두 범주:곧 '존재'와 '무'라는 주제를 놓고, 존재론과 반야사상, 그리고 토미즘 등의 창을 통해 그 의미를 꼼꼼히 따지고 있다.
송상일
1945년 제주에서 태어나 줄곧 제주에서 살고 있다. 1976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에 당선하고, 같은 해 <현대문학>의 추천을 받아평단에 나왔다. 제주신문.제민일보.한라일보 편집국장을 지냈고, 제주도문화상을 받았다.
주요 저서로는 평론집 <시대와 삶> <천사의 풍문>과 동화집 <물음표의 가출>이 있다.
-책머리에
[1] 1장 국가와 황홀
1. 케케묵은 주제
2. 가와카타와 미시마
3. 몸 던진 여자들
4. 건축가들
5. 이상한 언어
6. 에로틱하지 않은 에로스
7. 몸과 살
8. 타지 않는 불
9. 시간 죽이기
10. 얼빠진. 얼 빼는
11. 구멍
12. 무로부터의 창조
13. 실패 놀이
14. 니르바나
15. 바람의 영
16. 1장을 마치며
[2] 2장 존재와 무
1. 로고스
2. 이다/있다
3. 무
4. 동굴
5. 돼지!
6. 아!
7. 알라야식
8. 공
9. 것
10. 신
11. 여여
12. 은총
13. 말하기
프로이트에 의하면, 사내애는 계집애에게 돌기물이 '없음'을 처음 발견하고 거세 공포를 느낀다(그에게도 무는 존재의 경여이다). 그러나, 거꾸로, 계집애의 '없음'을 발견하고 비로소 자기 가랑이 사이의 '있음'을 확인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인도 논리학의 아포하 논쟁은 이 문제를 싸고 일어났다.
무가 존재자의 부재인 한, 무는 존재 기생적이다. 암소가 없다는 것은 이미 암소의 존재를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무가 그 위용을 드러내는 것은 존재자의 부재 때가 아니라 존재자가 정립될 때이다. 무는 존재의 핵심에 벌레처럼 기생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존재자가 무에 둘러싸여 있다.
암소는 암소 아닌 것에 의해 존재자의 자격을 얻는다. 그런데 암소가 아닌 것은 무한수다(가령 "암소는 돼지가 아니다"라는 진술은 암소으리 정의가 될 수 없다. 주전자도 돼지가 아니다. 그러나 주전자는 암소가 아니다. 암소를 규정하기 위해 우리는 돼지가 아니다, 주전자가 아니다, 오토바이가 아니다.....의 무한 부정을 감행해야 한다). 암소는 거대한 무에 둘러싸여 떠오른다. 어둠 가운데 떨어진 조명 속으로 걸어들어오는 주인공처럼 담당하게, 혹은 고독하게.
시간의 틈새들을 훔치듯 낚아채며 썼다. 그래서 천식 앓는 문장이 되었다.
미셸 투르니에가 범주들을 옛 무구 장식대의 순서 - 무거운 무기는 아래에, 가벼운 것은 위 - 에 따라 배열한 걸 본 적이 있다. 플라톤은 맨 위층에 가장 무거운 것을 걸었다(이데아는 모든 것이 모든 것이므로). 나는 그 자리에 무를 걸었놓는다. 나의 이데아는 가장 희박하다.
생각의 실마리를 준 것은 자오였다. 생각만 번거롭고, 소득은 이렇듯 초라하다. 그러나 현명한 독자는 저자가 담은 것보다 더 건질 것이다. 저자도 독자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