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메로스의 사상에 포함된 상고 시대 그리스의 종교적 경험과 소포클레스를 위시한 고전기 비극 작가들의 사상들에서 이 유형을 추적하고, 그리스 문화가 수치문화에서 죄문화로 발전한 것에 주목한다. 저자는 여러 주제들을 현례를 통해서 현대 인류학과 심리학을 분석 수단으로 삼아 뛰어난 통찰력으로 시종일관 명료하고 신중하게 기술하고 있다.
머리말
제1장 아가멤논의 변명
제2장 수치문화에서 죄문화로
제3장 광기의 축복
제4장 꿈 유형과 문화 유형
제5장 그리스 샤먼들과 금용주의의 기원
제6장 고전기 합리주의와 변동
제7장 플라톤, 비이성적인 혼 그리고 전승된 집성체
제8장 자유에 대한 공포
-부록 Ⅰ -부록 Ⅱ
주 역자 후기 색인
수치문화에서 죄문화로
정화라는 주제는 나중에 다시 다룰 것이다. 지금 해야 할 일은 호메로스에서 우리가 이미 검토한 바 있는 심리 개입의 관념으로 되돌아가 이 관념이 상고 시대의 완전히 다른 종교적 맥락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묻는 것이다. 이 물음에 대해서 가장 쉽게 대답하려면 아테라는 낱말과 다이몬이라는 낱말이 호메로스 이후에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를 살펴보면 된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서사시 전통이 어느 면에서는 상당히 충실하게 재현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여전히 아테는 목적에 맞게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비이성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나타낸다. 가령 파이드라가 도무지 음식을 먹지 않으려고 한다는 말을 듣고, 합창가무단은 그 까닭이 아테 때문인지 아니면 죽기로 작정했기 때문인지 물어본다. 아테가 생기는 자리 역시 튀모스 혹은 페레네스이며, 아테를 일으키는 동인도 호메로스에서와 아주 흡사하다. 그것은 대개 불특정한 다이몬이거나 신 또는 신들이고, 특정한 올림포스 신들인 경우는 이보다 훨씬 드물며, 가끔은 호메로스에서처럼 에리뉘스이거나 모이라이고, 딱 한 번 <오뒤세이아>에서처럼 포도주이다. 그러나 중요하게 발전된 면도 있다. 우선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아테는 이따금 징벌로 표현됨으로써 도덕적으로 해석된다. 이는 호메로스에서 <일리아스> 9권에서 -딱 한 번 그리고 다음으로 헤시오도스에서 발견된다. 헤시오도스는 아테를 휘브리스에 대한 징벌로 여기면서 재미있게도 "고귀한 자조차도"그것을 피할 수 "없다"고 말한다. 다른 초자연적인 징벌들처럼 죄인이 살아 있을 동안 "불행한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그것은 그의 후손들에게 부과될 것이다. 아테를 징벌로 보는 이러한 생각에서부터 그 말뜻의 폭넓은 외연이 자라난다. 이 낱말은 죄지은 자의 마음 상태에 적용될뿐더러, 이 상태에서 비롯된 실제의 재앙들에도 적용된다.
<< 고대 그리스인들이 정말 합리적으로 살았을까 >> [한겨레신문 / 이상수기자]
고대 그리스는 흔히 ‘합리주의’의 대명사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정말 고대 그리스인들이 그렇게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살았을까? 에릭 도즈 교수의 『그리스인들과 비이성적인 것』(1951)은 이런 의문에서 출발한다. 지은이는 “인간의 영혼 속에는, 그 지적 발전의 수준이 어떠하든 간에 뿌리뽑을 수 없는 원시적 정신의 본질이 놓여 있다”는 인류학자 레비-브륄의 말에 동의를 표한 뒤, “우리가 오늘날 직접 관찰할 수 있는 어떠한 사회도 면제받을 수 없는 사유의 ‘원시적인’ 양식으로부터 고대 그리스인들만을 면제시켜주어야 할 까닭이 있는가?”라고 묻는다.
모두 8장으로 이뤄진 이 책에서 지은이는 일탈적 행동, 광기, 꿈, 샤머니즘, 주술 등 “인간의 본성과 행위 속에 있는 비이성적 요인들”에 대해 그리스인들이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 매우 실증적으로 밝히고 있다. 지은이는 이야기의 실마리를 ‘아테(미망)’라는 관념에서 풀어간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어떤 인간이 규범에서 벗어난 일탈 행동을 하는 원인을 ‘아테(미망)’에서 찾는다. 가령 자기 여자를 다른 사람에게 빼앗긴 뒤 그 보복으로 아킬레우스의 여자를 빼앗은 아가멤논은 자신의 행위에 대해 “제우스와 에리뉘스(복수의 여신) 등이 내 마음속에 사나운 아테를 보냈기 때문”이라고 변명한다. 그리스인들은 또한 ‘광기’를 질병에 의한 것과 신적인 것으로 나눴다. 특히 간질은 ‘신성한 병’으로 여겼고, 정신병에 걸린 이의 발언은 조리만 서 있다면 ‘예언’으로 간주되기도 했다.
이런 논의를 통해 지은이는 그리스의 합리주의가 “비이성적인 것의 힘과 놀라움 그리고 위험을 얼마나 심오하고 넘치는 상상력으로 꿰뚫어보았는지, 또 인간의 본성과 행위 속에 있는 비이성적인 요인들을 통찰하고 제어하기 위해서 어떤 투쟁과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지은이는 그리스 문화의 ‘비합리적인 면’에 대한 연구를 통해, 사실은 합리주의에 좀더 깊은 신뢰를 바치고 있다. 그의 관점과 결론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독자는 이 책을 통해 인간의 행동과 사고의 복잡성과 다면성에 대한 풍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 '합리'만이 그리스의 전부가 아니다 >> [중앙일보 / 편집부]
고대 그리스 문화를 서구 문화 합리주의의 고향으로 여겨온 통설에 반기를 들고 있다. 고대 그리스 역시 풍부한 원시적 사유의 흔적이 있었으나 그동안 얼버무려져왔다는 것이다.
방식은 문화인류학과 심리학이라는 분석수단을 통해 상고 시대 그리스의 종교적 경험과 고전시기 비극 등에서 비 이성적인 요인들을 차례로 입증해 보인다.
소크라테스.플라톤의 사상에 묻어있는 샤먼적 요인들, 주술적인 유형에 대한 조명도 이뤄진다. 꿈.광기.점성술.윤회 등도 당연히 다뤄진다.
반세기 전 캘리포니아대 출판부를 통해 나온 저작이나 낡아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상당 부분 전문적이다.
오랫동안 그리스 문화는 합리주의를 대표했던 만큼 그리스 사회의 비이성적인 요인들은 비그리스적이라거나 동방의 영향이라고 도외시되었다. 저자는 이 원시적인 정신성이 고대 그리스인들의 생활에서, 그들의 종교와 문학, 철학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문화 유형 중의 하나라고 말한다. 저자는 호메로스의 사상에 포함된 상고 시대 그리스의 종교적 경험과 소포클레스를 위시한 고전기 비극 작가들의 사상들에서 이 유형을 추적하고, 그리스 문화가 수치문화에서 죄문화로 발전해나갔음에 주목한다. 또한 저자는 오르페우스와 피타고라스, 엠페도클레스 등 소크라테스 이전 사상가들과 심지어 플라톤의 사상에마저 뿌리 깊게 남아 있는 그리스 문화의 샤먼적인 특징들을 파헤친다. 나아가 저자는 그리스 합리주의가 태동한 지 수세기 후에 이에 대한 낭만적 반동과 더불어 그리스 정신에 지울 수 없이 각인된 새로운 비합리적인 경향, 즉 주술적이고 종교적인 유형에 다시 주목한다. 이러한 정신 경향을 추적하면서 저자는 신에 의한 미망과 신의 질시, 대물림된 죄의 오염과 죄책, 사후 징벌, 그리고 정화와 환생, 윤회, 나아가 꿈, 광기, 제의, 주술, 점성술, 강신술 등을 다루고 있다. 그는 이 다채로운 주제들을 그리스 신화와 종교, 문학, 철학, 문헌학, 사회경제사, 인류학, 심리학 등 폭넓은 분야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파고들고 있으며, 그리스인들이 경험한 감정들과 사고들을 풍부한 사례를 통해서 보여준다. 나아가 저자는 이 주제들을 현대 인류학과 심리학을 분석 수단으로 삼아 뛰어난 통찰력으로 시종일관 명료하고 신중하게 기술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