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나에게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몸소 보여주셨지만 나는 서푼어치도 못 되는 알량한 지식이 만든 미망 때문에 그걸 보고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때가 많이 늦어지기는 했지만 이제야 겨우 보이는 것 같습니다. 내가 행복하게 사는 방법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어 친하게 사는 것임을 압니다. 상생의 길이 어디에 나 있는지를 부끄럽게 깨닫습니다. 어머니가 아직 저렇게 살아 계실때 인간의 길이 어디로 나 있는지 다시 확인하겠습니다. 어머니가 살아 계신다는 것은 정녕 큰 행복이며 자랑입니다.
정동주
시집<농투산이의 노래>를 발표하면서 글씨기를 시작하여, 장시 <순례자>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서사시집 <논개>를 비롯해 일곱 권의 시집을 펴낸 뒤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대하소설 <백정>, <단야>, <민적>, 장편소설 <콰이강의 다리>, <신의 지팡이>, <불의 자문>등이 있고, 역사자료집<까레이스끼 또 하나의 민족사>, 평전 <논개>, 오페라 <조선의 사랑, 논개>, 민족극 <진양살풀이>가 있다.
<소나무>, <조선 막사발 천년의 비밀>을 출간하였고, 계속해서 한국의 문화및 한국인의 정체성 연구와 집필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신의 지팡이>, <까레이스끼 또 하나의 민족사>, <논개>등은 일본에서 번역 출판되었다. 주요 논문으로 <민속과 한국의 색채 연구>, <조선천민제도 연구- 백정을 중심으로>가 있다.
1. 어머니, 그 이름을 찾아서
2. 시집살이
3. 첩아첩아 문 열어라
4. 내 사랑 영원히
5. 딸이란 무엇인가
6. 처녀와 총각
7. 이별 혹은 과부 되기
8. 재혼, 그 수난의 길
9. 일과 노래의 사계
10. 가지 않은 길
- 참고 문헌
시집살이
어머니께서 한 생에 온몸으로 치러내신 시집살이 고난사가 요연하게 그려진 슬픈 서사시입니다. 남자는 이승살이와 저승살이만 살지만, 여자는 이승살이, 저승살이 외에 시집살이라는 또 하나의 세상을 더 살아야 하는 인고의 주인공입니다. 그래서 남자보다 오래 산다고 하더군요. 참으로 깊은 뜻이 함축된 말인 듯싶습니다.
이 노래에서는 한 편의 잘 짜여진 비극을 감상하는 것 같은 슬픔과 통한이 적절한 배역들의 연기를 통하여 실감나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어머니에게 시집살이를 시키는 것은 시어머니, 시아버지, 시누이 세 사람입니다. 흔히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는 듣기도 보기도 좋은 가족 관계의 아름다움이 이 노래에서는 제외되어 시집살이의 가혹함을 더해 주고 있습니다. 먼저 시어머니는 사사건건 트집을 잡고 며느리를 들볶는 '앙살새'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시아버지도 '유달새'라는 말로 은유되었듯이 고부 사이의 갈등을 해소시켜 주거나 며느리를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시어머니 편을 들면서 며느리를 더욱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삐죽새'로 표현된 시누이는 올케가 하는 일마다 비웃고 빈정거립니다. 시누이 자신도 시집을 가게 되면 제 눈앞의 올케가 겪는 매운 시집살이를 하게 될 터인데도 올케 눈에 되눈물 내는 짓은 제 어머니보다 더합니다. 이 노래에서는 주인공의 남편 되는 사람이 긴한 볼일로 집을 떠나 있어서 주인공 혼자 시련을 겪고 있습니다. 어쩌면 남편은 과거 공부를 하느라 어디 먼 절간에 가 있거나 벼슬살이를 하면서 먼 곳에 나가 있는지도 모를 일이지요. 젊은 어머니는 혼자 시집살이를 견디다 못해 절간으로 달아납니다. 스님이 되려는 뜻이겠지요. 기어코 절간으로 간 어머니는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됩니다. 삭발하는 장면이 애절합니다. 어쩌면 이다지도 기구한 삶인지 뜨거운 울음이 목을 찢습니다. 후회와 연민도 있습니다. 삭발은 번뇌를 여의는 의식입니다. 아니 그러기 위한 맹세입니다.
<< 세상의 근본이자 작은 神 어머니 >> [동아일보 / 황태훈기자]
“어머니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나요.”
중견 개그맨 이홍렬씨는 어머니에 대한 질문만 나오면 눈시울이 붉어진다. 성공한 모습을 보여드리기도 전에 너무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가 그립기 때문이다.
못다한 효심에 그리운 어머니가 있는가 하면 첼리스트 정명화,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지휘자 정명훈 등 삼남매를 세계적인 클래식 스타로 키워낸 어머니 이원숙씨도 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동명소설 『어머니』도 이와 다르지 않다. 출가한 딸이 병사하고 공산주의자가 된 아들이 사형당하는 아픔을 겪으면서도 좌절하지 않는 어머니(펄 벅·1934)와 혁명에 뛰어든 아들에 대한 끊임없는 사랑으로 결국 여성 혁명가로 거듭나는 어머니(고리키·1906). 이들 작품의 어머니는 시대와 내용은 다를지라도 생명의 창조자이면서 자식에 헌신하는 모성애를 보여준다.
최근 발간된 『어머니의 전설』은 ‘어머니와 여자와 딸에 관한 비망록’이다. 니미(경남), 어마니(전남), 어망이(함남), 제미(함북), 엄마이(황해), 어멍(제주) 등 지방별 어머니 호칭을 소개하고 1980년 봄부터 2001년 겨울까지 친모 장모로부터 노래 73곡을 채록해 사진과 설명을 곁들였다.
“어머니는 그 무엇이 생겨난 근본입니다. 모든 신(神)의 능력이 응축되어 내재된 작은 신이면서 사람입니다.… 자식을 잉태하고 출산하고 젖 먹여 인간 되게 키워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불멸의 힘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모성(母性)’이라 말합니다.”
조선시대 어머니는 유교적 가부장제도 때문에 ‘고유한 이름’이 없었다. 신사임당 허난설헌 같은 유명한 인물이나 기생 외에는 드문 경우다. 처녀 때는 친정에서 ‘큰 아씨’ ‘작은 아씨’가 이름 대용이었다가 혼인한 뒤에는 남편의 성씨를 따라 ‘김 집’ ‘박 실’이라는 식으로 불렸다.
딸을 계속 낳은 ‘죄’로 눈물의 시집살이를 하고, ‘명태와 여자는 두들겨 패야 부드러워진다’는 야만적인 얘기에도 저항하지 못한채 감내해야했던 어머니들의 사연은 노래로 이어진다.
“성아 성아 우리 성아/ 시집살이 우떻더노/ 아홉 쪽 삼베 치마/ 눈물 받아 다 썩었제.” 이밖에도 저자는 궁녀 기녀 유모 무녀 따라마님(마님을 따라다니는 여자) 통지기(물통을 지고 다니는 여자) 등 특수한 계급의 여성들의 삶을 간략하게 다루며 어머니의 딸들에 대한 애정도 잊지 않는다.
『엄마 냄새』는 따듯한 모성애를 추억하는 책이다. 파스텔톤의 그림을 지나 “세상이 힘들 때는 엄마 얼굴이 떠오릅니다”라는 한 구절을 읽는 순간 가슴뭉클한 무엇을 느낄 수 있다. 바로 엄마에 대한 그리움일 것이다.
짧은 글 10여 꼭지로 구성된 작은 소품집이지만 감동은 작지 않다. 시각 장애인 청년이 어머니가 보고 싶으면 잠을 청한다거나, 좌판에서 생선을 팔며 아들 뒤바라지를 하던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얘기 등 다양한 사연들이 따뜻함을 전한다.
특히 ‘편지’ 중에서 어머니에게 하지 못했던 “사랑한다”는 말을 되뇌는 장면은 ‘모성’의 소중함을 새삼 일깨운다.
<< 고달픈 어머니의 '가락' >> [중앙일보 / 홍수현기자]
"시어머니 앙살새고 시아바지 유달새고 시누년은 삐죽새고…." 이승살이와 저승살이만 있는 남자와 달리 시집살이가 하나 더 있다는 여자의 고달픔을 노래하고 있다.
경남 사천에서 문필활동을 하고 있는 정동주(55.사진)씨는 친어머니와 장모가 평생을 읊조리던 구전가요 73편을 채록했다.
"어머니께서 부르셨던 그 노래는 신과 인간을 향한 기도이자 항의였고, 미래의 어머니인 딸들을 향한 눈물의 고백이기도 했다"는 것이 정씨가 1980년부터 최근까지 채록작업에 매달린 변이었다.
아낙네들은 길쌈과 논일을 하고 시앗을 질투하며 이 노래들을 타령조로 흥얼거렸다.
정씨는 "어머니의 노래는 출생.결혼.노동으로 이어지는 여인들의 신산한 삶을 잘 표현해 문학자료로 삼기에 훌륭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어머니 김유복녀(89)씨와 장모 신경남(87)씨가 들려준 노래에 '고려사''경국대전' 등 문헌 자료와 이웃들의 유사한 삽화를 각색해 한편의 '한국 여인사'를 완성했다.
청춘.결혼.시집살이 등 총 10개 항목으로 나누고 상황에 맞는 노래를 몇 곡조 소개한 뒤 여인네들의 일화를 구수하게 곁들이는 식이다.
예쁜이.언년이.음전이로 불리다 시집가서는 남편 성을 따라 김집.박집.김실.박실이 되고 아이가 태어나면 아무개 어미로 이름을 대신했던 여인들.
그네들은 친정을 5리 앞에 두고 아버지 초상 때 32년 만에 처음 친정에 가고, 대신 명절날 친정 왔다 돌아가는 시누이 부부에게는 사돈어른 새옷과 청주 한병, 안주, 떡 한 동고리, 엿 한 단지를 지워보낸 한많은 사연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잠아 잠아 짙은 잠아 이내 눈에 쌓인 잠아,/잠아 잠아 오지 마라"를 외치며 자식들을 위해 모내기를 하고 옷을 짓던 인고의 여인들이다.
감독 이정향이 "모든 외할머니에게 바친다"는 부연을 단 영화 '집으로…'처럼 이 책은 모든 어머니에게 바치는 사모곡이다.
<< 이 땅의 여자의 일생, 어머니의 노래, 어머니의 전설 >>
정동주 시인의 <어머니의 전설>(이룸)은 이 땅을 살아온 그리고 살아갈 여성들의 이야기가 생생히 담겨 있는 책이다. 구전가요를 모티프로 우리의 과거사와 현대사 속에 들어 있는 여자로서의 일생을 시인의 감성으로 재해석해 내고 있는 이 책은 딸로서 세상에 던져지고, 아내로서 세상을 지키고, 어머니로서 세상을 준비했던 이 땅의 여성들의 모습을 안타까운 그리움으로 되돌아보게 해준다. <어머니의 전설>에 나오는 구전가요 73편은 시인의 두 어머니, 자신의 친어머니인 김유복녀(金幼福女, 89세) 님과 부인의 어머니(장모님) 신경남(申慶南, 87세) 님이 들었거나 불러왔던 노래들이다. 두 분의 육성으로 전해진 이 노래들은 작가가 누군지도 언제부터 불리게 됐는지도 모르는, 어머니의 어머니 또 그 어머니의 어머니가 전해 준 "신과 인간을 향한 기도이자 항의였고, 말없이도 사람답게 살도록 껴안아 다독여준 자연을 향한 화답이었으며, 어머니 안에 들어 있는 어머니의 어머니와 어머니 몸 밖에 나와 있는 미래의 어머니인 딸들을 향한 눈물의 고백"이다.
이 노래들에는 시집살이의 고단함, 가슴속에 깊숙이 묻어둔 그리움, 노동의 부담 등 "기구하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여성이자 어머니"로서 삶의 애환이 그 어떤 기록보다 진실하게 담겨 있다. 이 노래들을 부르면서 이 땅의 여성들은 "여자이기 때문에 겪어야 했던 차별과 모욕, 뿌리깊은 인습의 고난과 능멸과 따돌림, 무엇보다 아프고 서러웠던 가난과 문맹으로 인한 피눈물의 나날들 속에서도 인간의 길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고, 그 울분과 한을 진화 에너지로 바꾸어 승화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작가가 이 노래들을 중심으로 그려내고 있는 '어머니의 전설'은 겉으로는 한없이 부드럽고 인자하지만 안으로는 내밀하고도 집요한 열정으로, 금강석같이 강하고 늠렬한 의지로 자식과 세상을 품어 키우는 자연과도 같은 위대함이다.
<< 어머니라는 이름의 인간성 회복 >>
<어머니의 전설>은 남성 중심 사회에서 끝없는 희생을 강요당하고, 가난의 고통 속에서 괴로워하면서 인내와 부지런함으로 견뎌왔던 이 땅의 여성 수난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무지, 맹종, 예속, 나약함, 측은함이 아니라 불멸의 지장보살"의 모습인 것이다. 작가는 "어머니의 수난사를 섣불리 보지 말라"고 말한다. 과거 여성들의 인고의 세월을 부정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대부분을 잃어가고 머지않아 욕심과 오물로 가득 찬 우리 자신마저 잊게 될 일이기 때문이다. 자연과 세상과 인간을 품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 챙기려 하는 것은 곧 자신을 잃게 되는 일이고, 인간으로서의 삶을 잃게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모든 여성은 어머니가 됨으로써 완성된다. 그리고 모든 인간은 이 어머니라는 이름을 간직함으로써 인간의 길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의 욕심이 불러낸 모든 잘못을 감싸안아 주고 지켜주는 어머니의 모습이야말로 우리가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힘이 되어주고 채찍이 되어주는 것이다.
"이 땅에서 쫓겨난 외로움에 떠밀려 늙어가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은 현대를 사는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물질문명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리고 허우적거리는 우리에게 어머니를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다는 것은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끈이다. 그래서 어머니를, 그 모성의 세계, 자연의 위대함을 기억해야 하는 것이다. "인간이 자연을 정복한다거나 지배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 자연의 눈에 눈물내면 인간의 눈에는 피가 진다는 것을 뒤늦게야 깨닫습니다. 상생(相生)의 길이 어디에 나 있는지 부끄럽게 깨닫습니다"라는 작가의 말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어머니를 통해 자연의 한 구성원으로서 순리를 지키며 사는 참된 인생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될 것이다.
<< 시인의 감성으로 풀어쓴 한국 여성사 백과사전 >>
<어머니의 전설>은 굴곡 많은 삶을 지난하게 살아온 한국의 모든 여성들의 이야기이다. 딸이라는 이름과 아내라는 이름, 첩이라는 이름, 기생이라는 이름…… 그리고 어머니라는 이름을 가진 그들에게 왜 자랑스러움과 기쁨이 없을까마는 무엇보다 그들은 슬픈 존재이고, 고통받는 존재이다. 그리고 그것을 안으로 삭혀 새로운 자양분을 만들어내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고통받는 여성은 모두가 어머니이다. 작가는 이들을 시인의 눈으로, 아들의 마음으로 담담히 바라보며 가슴 뭉클한 서사시로 그려내고 있다. 그 이야기 속에는 우리 어머니가 불렀던 노래가 바탕이 되어 있으며, 가히 우리 여성사 백과사전이라 할 만큼 많은 연구와 자료 조사가 포함되어 있다. 이 책은 우리의 근원으로 돌아가 존재를 확인해 보는 철학서이자 생생한 육성으로 채록한 구전가요집이다.
<< 빛 바랜 사진들 그러나 그리움으로 기억해야만 할 소중한 모습들 >>
<어머니의 전설>에는 한국의 전통 풍경과 아름다운 자연, 우리 어머니들의 세월을 담은 사진들이 글과 함께 실려 있다. 책을 펴면 먼저 수묵화와도 같은 무게의 사진들이 일상에서 쉬 퍼올릴 수 없는 내면의 깊숙한 감성을 일깨워낸다. 묵묵한 시선으로 담아내고 있는 어머니들의 주름진 얼굴과 농촌 여성들의 일하는 모습, 우리의 전통 풍경 등 지난 시절을 견뎌온 우리 어머니들의 삶이 굳이 글을 읽지 않아도 그대로 전달된다. 그래서 어찌 보면 이 책은 한편의 작품집을 보고 있는 착각마저 들게 한다. 뿌리와 근원으로 향한 독자의 촉촉해진 감성이 작가의 글을 만나면서 독자의 감성은 비로소 최고조에 이르른다. <어머니의 전설>에서 작가 권태균의 사진을 빼놓고 생각할 수 없는 이유도 여기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