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폰을 입에서 뗀 그 희한한 사람의 시선이 동길이의 시선과 마주쳤다. 순간 동길이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말았다. 뒤통수를 야물게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그리고 눈물이 핑 돌았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 희한한 사람이 바로 아버지였던 것이다....
하근찬 단편집. <흰 종이수염> <전차 구경> <수난 이대> 등이 수록되어 있다.
<흰 종이수염>은 6.25를 배경으로 깔고 있다. 이 이야기는 동길이가 사친회비를 못 내서 책보를 빼앗기고 학교에서 쫓겨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팔 하나를 잃고 돌아온 아버지가 극장 광고판을 앞뒤로 멘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창식이를 때리는 동길이를 말리는 것으로 끝난다. 아버지의 턱에는 흰 종이를 오려 만든 가짜 수염이 너풀거리고 있다. 그렇다면, 전쟁을 직접 제시하는 장면이 하나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전쟁과 관련해서 이야기되는 이 작품에서 전쟁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일까? 주인공인 어린 동길의 시선을 따라가며 이에 대한 답을 찾아보자.
하근찬
경북 영천 출생. 전주사범학교를 거쳐 수년 간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수난이대 受難二代'가 당선되면서 문단에 등단했다. 1981년 장편소설 <山에 들에>로 조연현 문학상을, 1989년 <작은 龍>으로 유주현 문학상을 받았다.
작품으로 <달섬이야기>, <월례소전 月禮小傳>, <산울림> 등이 있다.
강우현(그림)
1953년 충청북도 단양에서 태어났다. <사막의 공룡>, <봄을 찾은 원숭이>, <소나기>에 그림을 그렸으며 <싱싱>, <랑랑>, <장장> 등 15권의 그림 동화를 발표하였다. 환경 동화 <가우디의 바다>를 번역하기도 했다. 일본 노마 콩쿠르 대상, 체코 BIB금패상, 일본 고단샤 출판 문화상, '92 올해의 좋은 아버지상, '92 올해의 디자이너상, 한국 어린이 문화 대상을 수상하였다. 현재 그림 동화 작가, 캐릭터 디자이너로 활동하며 홍익대학교 대학원에 출강하고 있다.
1. 흰 종이수염
2. 전차 구경
3. 수난 이대
4. 작품 해설
흰 종이수염
"으으윽"
한 개밖에 없는 팔을 내뻗어 기지개를 켜며 부스스 일어났다. 동길이는 저도 모르게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그리고 얼른 아버지를 향해 절을 하기는 했으나, 겁을 집어먹은 듯이 둥그래졌다. 아버지는 동길이를 보던,
"으으....핵교 잘 댕기나? 어무이 말 잘 듣고?"
그리고 아아윽! 커다랗게 하품이었다. 점심상을 가운데 놓고 아버지와 동길이가 마주 앉았다. 그 곁에 어머니는 뚝배기를 마룻바닥에 놓고 앉았다. 몰씬몰씬 김이 오르는 수제비죽....동길이는 목젖이 튀어나오는 것 같았다. 후딱 숟가락을 들었다. 그리고 그 뜨끈뜨끈한 놈을 푹 한 숟갈 떠올리기가 무섭게 아가리를 짝 벌렸다. 아버지도 숟가락을 들었다. 왼쪽 손이었다. 없어진 팔이 하필이면 오른쪽이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그것을 보자 이마에 슬픈 주름을 잡으며 얼른 외면을 했다. 그러나 동길이는 수제비를 퍼올리기에 바빠서 아버지의 남은 손이 왼손인지 오른손인지 그런 덴 도무지 관심이 없는 듯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