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케의 프랑스어 시들은 대부분 2-3연으로 이루어져 길이가 짧으며, 각 시행의 길이도 전반적으로 짧은 것이 많아 경쾌한 느낌을 준다. 또한 등장하는 소재들도 아름다운 자연 풍광이나 일상적인 사물들, 장미 창문 손바닥 등이어서 <비가>에서 사물들을 대하는 태도와는 사뭇 다르다. 그래서 이미 우리말로 번역된 독일어 시들에 익숙한 독자들은 본 번역에서 어떤 생경함마저 느낄지 모르겠다. 그런데 바로 그점이야말로 프랑스어 시가 갖는 특별한 의의이다. 뮈조 성에서 필생의 대작을 완성하고 난 후의 정신적인 만족감과 이완,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자연 환경 속에서 살게 된 행복감 등이 이루어낸 프랑스어 시들은 편안하면서도 풍부한 시의 세계를 이루고 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1875년 체코 프라하에서 태어났다. 감수성이 예민하고 태생적으로 병약했던 탓에 다니던 군사학교를 중퇴하고, 이후 프라하 대학과 뮌헨 대학에서 철학과 독문학, 미술사를 공부하면서 그의 첫 시집 <삶과 노래>(1894)를 출판했다. 한 곳에 정착하기보다 전 유럽을 방랑하듯 젊은 날의 대부분을 여행과 많은 여인들과의 사랑과 교류로 보냈던 그는, 특히 1897년 뮌헨에서 만난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아 1899, 1900년의 2회에 걸쳐 함께한 러시아 여행과 1902년 이후 12년 동안 조각가 로댕의 비서로 파리에 머물렀던 시기를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시 세계를 구축하기에 이른다. 서정시의 새로운 양식인 '사물시'의 개발도 이때 이뤄졌다. 1919년 이후 만년을 스위스의 뮈조 성에 머물면서 그의 시의 정점으로 평가받은 대작들을 완성했다. 오랫동안 백혈병으로 고생하다 1926년 겨울, 제네바의 한 요양소에서 51세를 일기로 생을 마칠 때까지 오로지 시와 예술에 평생을 바친 그는 방대한 양의 시와 산문, 예술론을 남겼다.
<형상시집>(1902), <신시집>(1907), <두이노의 비가>(1922),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1922)등의 시집과 산문집<말테의 수기>(1910), 예술론 <로댕>(1903)등이 있다.
1. 기획의 말
2. 과수원
3. 발레의 사행시
4. 장미
5. 창문
6. 기타
7. 릴케와 프랑스어로 쓴 시
8. 작가 연보
여신
잠들어 있는 텅 빈 정오에
그녀는 얼마나 여러 번 지나가는가.
육신의 의혹을 조금도
테라스에 남기지 않고.
그러나 자연이 그녀를 느끼면,
그 보이지 않는 이의 습관은
겉으로 드러난 부드러운 제 윤곽에
끔찍스러운 광채를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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