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가 듣는 음악은 현실의 다양한 모습과 꿈을 표현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음악을 통해 감정을 공유하며 때로는 위로받고 때로는 평안해한다. 그리고 음악을 음악 이외의 다른 어떤 특정한 목적에서 듣지 않는다. 그렇다면 고대에는 어떠했을까? 음악이 사람의 심성에 미치는 영향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고대 중국에서는 음악을 인간의 윤리.도덕과 연관짓고, 인간을 윤리적으로 더 선한 심성을 지닌 인간으로 만드는 것을 음악의 존재 가치이자 목적으로 여겼다. 그러나 중국의 문인 혜강은 음악에 대한 이러한 전통적 이해를 비판하고 소리 자체가 갖는 고유의 심미적 가치에 의미를 부여한다. 마음에 평정과 위안을 주며 소박하고 꾸밈없는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여유를 주는 것이 음악 본연의 모습임을 주장하는 혜강의 사상은, 인간의 소비적인 욕망만을 자극하고 만족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듯한 오늘날의 음악을 반성하게 한다.
혜강(223~262, 일설에는 224~263)
위나라에서 태어나 일찍이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와 형에게서 극진한 사랑을 받으며 자란 혜강은, 노장 사상을 연구했으며 항상 금을 연주하고 시를 노래하는 유유자적한 삶을 즐겼다. 수려한 용모와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강직한 성품 때문에 당시 많은 이들이 그를 흠모하며 스승으로 받들고자 했다.
스물두 살에 위나라 종실의 장락정 공주와 결혼해 중산대부라는 관직을 받았으나 곧이어 발생한 사마씨의 정변으로 관직에서 물러난다. 그리고 사마씨 정권이 저지르는 독단과 패권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당시 절친한 친구였던 산도가 사마씨 정권하에서 관직을 맡게 되어 혜강에게 관직에 나올 것을 청하지만, 이를 단호히 거절하고 산도에게 절교를 선언하는 편지를 쓴다. 이 편지는 형식상으로는 친구에 대한 절교를 그리고 있지만, 이면에서는 허위적인 명교의 탈을 쓰고 정권을 탈취한 사마씨 정권을 비판하고 있다.
그러다가 마흔이라는 나이에 참수를 당한다. 참수당하는 마지막 순간 그는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고 태연자약하게 금을 한 곡 뜯고는 오히려 자기가 즐겨 연주한 그 곡을 다른 이에게 전해주지 않아 그 곡의 운명이 다하게 된 것을 슬퍼한다. 이처럼 혜강은 부자연스러운 현실의 삶에서 벗어나 자연에 스스로를 맡기고 무위자연의 소박하고 담담한 삶을 추구한다.
혜강의 <성무애락론>은 노자와 장자의 음악 사상을 근간으로 하되 '인위적 질서를 벗어나 자연스러움에 맡기자'는 명제를 접목해, 전통적이고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해온 유가의 '성유애락론'과 이에 근거한 음악 예술의 가치관을 근간부터 부정하고 비판한 중국 최초의 자율적인 음악 미학 논문이다.
<성무애락론>에 담겨 있는 음악의 여러 중요한 문제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은, 중국 음악사에서 음악을 최초로 독립적인 예술로서의 가치와 의의를 지닌 것으로 자각하게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 들어가는 말
[1] 제1장 성무애락론
1. 첫 번째 문답
2. 두 번째 문답
3. 세 번째 문답
4. 네 번째 문답
5. 다섯 번째 문답
6. 여섯 번째 문답
7. 일곱 번째 문답
8. 여덟 번째 문답
[2] 해제-중국 최초의 자율적 음악 미학론
1. 불의한 권력에 타협하지 않은 은둔 명사, 혜강
2. 예술 정신의 자각 시대
3. 소리에는 애락이 담겨 있지 않다
4. <성무애락론>의 의의와 특색
5. 예술의 본질에 대한 인식 전환
6. 천년 전의 울림, 혜강
- 주
- 더 읽어야 할 자료들
- 옮긴이에 대하여
일곱 번째 문답
진객이 비난하면서 말한다. "선생께서는 '술을 마시고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거문고를 타면 즐거워하는 사람과 슬퍼하는 사람이 동시에 나타난다고 하면서, 이 말을 이해시키기 위해 그 까닭은 마음속에 이미 형성돼 있는 일정한 감정이 어떤 사물을 접하면 곧 나타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사람의 마음을 살피는 일반적인 표현으로 이를 설명해 보겠습니다. 대체로 사람의 마음이란 즐겁지 않으면 슬프고, 슬프지 않으면 즐거우니 정감의 대체적인 구별이란 이런 것입니다. 따라서 우는 것은 슬픈 마음이 심해진 결과요, 웃는 것은 즐거운 마음의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나라, 초나라의 곡을 듣는 사람이 슬퍼서 눈물 흘리는 표정만 보였지 크게 웃는 표정을 보여준 적이 없다면 이는 제나라와 초나라의 곡의 본질은 슬픔이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타나게 된 감정은 모두 그 자체의 곡조와 서로 합치된 것이니, 어찌 그 곡이 매우 무겁고(가라 앉고) 변화가 적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의 정감이 슬프게 된다고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제나라와 초나라의 곡이 확실히 사람들을 울게 한다면, 이는 성음에 애락이 있다는 점을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이 됩니다."
동야주인이 답한다. "비록 인간의 감정이 (외부의) 감동을 받아 애락을 낳긴 하지만 그 애락은 각기 정도의 차이가 있고, 애락의 표현도 반드시 서로 같은 상태에 도달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무릇 조금 슬플 때는 얼굴 표정이 일그러지고 매우 슬퍼지면 울게 되는데, 이는 슬픔의 일반적인 표현 양식입니다. 그리고 (이와 반대로) 조금 기쁘면 얼굴이 펴지고 지극히 기쁘면 웃게 되는데, 이는 즐거움의 통상적인 이치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