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리나가 되고 싶은 건희, 엄마를 잊고 당당하게 살고 싶은 종천이, 지혜로운 삶의 밑그림을 그리고픈 태형이... 저마다 마음속에 간직한 푸른 바다를 향해 조금씩 발돋움하는 이 땅의 모든 열한 살들에게 김소진 선생님이 남겨 놓은 소중한 이야기!!
지은이 ㅣ 김소진 1963년 강원도 철원에서 태어나, 1997년 35세의 나이로 짧은 인생을 마쳤다. 서울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한 뒤 한겨레 신문사에서 기자로 일했고, 경향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소설가가 되었다. 생전에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보여 주는 뛰어난 작품들을 많이 남겼으며, '오늘의 젊은 예술가 상'을 받았다. 작품으로는 소설집<열린사회와 그 적들>, <자전거 도둑>, <고아떤 뺑덕어멈>,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 장편소설 <장석조네 사람들>, <양파>등이 있다.
그린이 ㅣ 배종헌 경원대학교 미술대학과 대학원에서 서양화를 공부했다. 실험적인 작업들로 세 차례의 개인전을 가졌으며 여러 단체전에 참가하였다. 현재 위덕대와 목원대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작가의 말 ㅣ 작지만 따스한 열한 살의 가슴을 위하여 가훈 때문에 당한 창피 꽃들도 우리처럼 아사달과 아사녀 내 친구 종천이 오분 전에 깬 꿈 동방의 어린 나그네 봉덕각시야, 봉덕각시야 마음은 어둠 속에서 상처입는다 집안의 숨은 내력 그리운 동방 바둑과 트럼펫 태형이, 일캡에게 도전하다 돌아온 성만이 꾸러기들의 합창
"시원한 과일 한 바구니 사세요!" 한참을 그렇게 돌아다니자 목이 컬컬해져서 시원한 과일을 먹고 싶었지만 호주머니 속에는 돈 한 푼 들어 있지 않아 그럴 수가 없었다. 한 번도 구걸을 해 본 적이 없어 얻어먹기도 글렀다. 다리도 아프고 땀도 많이 흐르고 해서 잠시 쉬고 싶었다. 이파리가 넓은 큰 나무 그늘 밑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뭔가 발등에 걸려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어이쿠, 어느 놈이 겁도 없이 감히 내 하나뿐인 다리를 밟고 지나가느냐? 어디 얼굴이 구경이나 한번 해 보자." 그는 몇십 년 전에 일어난 전쟁에서 다리 하나를 잃은 험상궂은 얼굴의 상이군인이었다. 그래서 목발을 짚고 다니는데 어찌나 심술궂은지 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그가 나타났다 하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과일을 달라면 과일을 주고 빵을 달라면 빵을 주고, 그리고 술을 달라면 술을 공짜로 내주었다. 그러지 않으면 몹시 성을 내고 험한 등쌀을 붙여오기 때문에 배길 도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에게 공짜로 물건을 내주면 그 날 장사가 더욱 잘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물건을 내주면서도 그렇게 기분 나빠하지는 않는 표정이었다. -p. 9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