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다는 것의 기적을 보여주는 이야기
어두운 흙 속에서만 새싹이 돋아나는 게 아니었다면, 차가운 겨울이 지나야만 따뜻한 봄이 찾아오는 게 아니었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실의에 빠지고 슬퍼했을까? 행복한 사람들만이 자기를 사랑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면 말이다. <내 이름은 태양꽃>은 어둠 속에 들어가면 누구나 묻게 되는 질문에 답하는 이야기다. 눈물은 왜 짜고 씨앗은 왜 단단할까? 눈물과 씨앗은 모두 아래로 떨어지기만 하는 것일까? 그 낮고도 어두운 곳에서 과연 우리는 무엇을 배우는 것일까? -김연수(소설가)
한강
1970년 광주에서 태어나 연세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93년 계간 <문학과 사회>에 시가, 199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붉은 닻>이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여수의 사랑> <내 여자의 열매> <검은 사슴> <그대의 차가운 손>이 있다. 한국소설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을 수상했다.
김세현 (그림)
화가. 1963년 충남 연기 출생. 경희대 미술교육과 졸업.
내가 태어난 곳은, 고동색 벽돌을 야트막하게 쌓아올린 담장 아래였습니다. 힘껏 떡잎을 흙 밖으로 내밀었을 때, 세상의 빛깔이 어두워 보여서 나는 좀 실망했습니다.
'땅속에서 나오기만 하면 환한 빛이 가득할 줄 알았는데..."
아무리 길게 목을 뽑아봐도 빛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단단한 흙을 비집고 나오느라 얼마나 힘들었는데... 몸 여기저기가 온통 멍투성인데."
나는 얼얼한 어깻죽지를 힘없이 늘어뜨리고 있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칫, 모르는 소리 말아."
누굴까? 어디서 들려온 말소릴까? 두리번거리다가, 가슴과 배가 땅에 바싹 달라붙어 있는 풀을 보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