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치는 서정과 투명한 감성으로 주목받는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시인 안도현의 어른을 위한 동화
『증기기관차 미카』는 우리가 잊고 살았던 '느림의 추억'을 오롯이 되살려 보여주는 작품이다. 한반도의 남쪽 바닷가에서 폭설이 지는 만주 벌판까지 내달리던 증기기관차 미카. 이제는 철도박물관 마당을 지키는 신세가 된 느림보 기차 미카를 옛 기관사가 찾아온다. 소멸을 향해 가는 미카와 기관사는 서로의 상처와 꿈을 어루만지며 존재에 대해, 삶에 대해, 그리고 무언가를 향해 달리는 길과 속도에 대해, 우리에게 천천히 말을 건넨다.
안도현
1981년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시 <낙동강>이, 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서울로 가는 전봉준>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96년 ‘시와시학’ 젊은 시인상, 1998년 소월시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 <서울로 가는 전봉준> <모닥불> <그대에게 가고 싶다> <외롭고 높고 쓸쓸한> <그리운 여우> <바닷가 우체국>, 어른을 위한 동화 <연어> <관계> <사진첩> <짜장면>, 산문집 <외로울 때는 외로워하자>가 있다.
최성환(그림)
1960년 경북 영천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 대학원 동양화과를 졸업했다. 지금까지 14회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1996년부터 1998년까지 화랑미술제에 3회 연속 참여했다. 오늘의 지역작가전(1992), 전환기의 한국화-자성과 자각전(1998), 오픈 아트 페어(1998-1999), 청담미술제(2000), 광주 비엔날레 특별전(2000) 등에 참가했다. 전업 화가로 활동중이며 한국미협회원이다.
달빛이 철길 위로 환하게 부서져내리는 밤이었다. 달빛 때문에 두 가닥의 철길이 마치 두 마리의 구렁이가 몸을 뒤치는 것처럼 보였다.
그때 철로 옆에 산더미처럼 쌓인 석탄 야적장에서 낯선 개한 마리가 미카 쪽으로 어슬렁거리며 다가왔다. 털이 새까맣고 쏘는 듯한 눈빛을 가진 검둥개였다.
미카가 개에게 물었다.
"넌 왜 여기서 어슬렁거리니?"
"무얼 좀 찾으려고."
검둥개는 고개를 숙이고 지나가는 말투로 대답했다.
"여긴 고속 열차들이 멈추지도 않고 달리는 위험한 곳이야. 대체 이 어둔 밤에 무엇을 찾아다니는 거야?"
검둥개가 말했다.
"끈 하나를 구하러 다니는 중이야."
검둥개는 두 눈을 좌우로 두리번거렸다.
"끈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진데...."
검둥개는 고개를 저었다.
이 작품은 재작년에 계간 <문학동네>에 연재했던 것을 대폭 손을 본 것이다. 이야기의 틀을 새로 짜고,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삽화들은 미련을 두지 않고 지웠다. 그러니까 기관차의 수리에 빗댄다면 빠뜨린 나사못을 끼우고, 기름칠도 다시 한 셈이다.
그 사이에 작품 속에서 그저 꿈에 불과했던 경의선 복원이 놀랍게도 실제 현실로 이루어지는 역사의 진전을 경험해야 했다. 나는 미카를 그 길로 가장 먼저 달려가게 하고 싶었다. 압록강 철료를 건너 만주 대륙 한복판으로 달릴 날도 그리 멀지는 않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