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지성 소설 명작선"은 우리 사회의 가장 깊은 곳에 생명의 길을 터주는 마르지 않는 언어의 샘이다. 이 책은 이창동의 소설 '소지'이다. 이창동이 보이는 평형 감각은 갈등의 진정성을 알게 할 뿐 아니라, 그것을 통해 거짓된 실존을 파헤친다. 그의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반성적 공범 의식을 가지고 발본적 성찰 의례에 동참하는 일이 된다.
지은이ㅣ이창동 1954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198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전리', '소지', '불과 먼지' 등을 발표하였으며, 지은 책으로 <소지>, <녹천에는 똥이 많다> 등이 있다. 현재 영화감독으로 활동 중이다.
여러분의 안전을 위해서
불과 먼지
친기
소지
끈
눈 오는 날
춤
빈 집
슈퍼스타를 위하여
꿈꾸는 짐승
전리
초판 해설 전통적 삶을 싸안는 성숙한 인식
신판 해설 '나쁜 피'의 불안과 고통의 뿌리
초판 작가의 말
신판 작가의 말
처음에 아버지는 아무런 반응을 보여주지 않았다. 짧은 순간 늙고 병색이 완연한 얼굴이 더욱 백치스런 표정을 짓고 있더니 문득 그 입에서 신음 같은 소리가 새어나왔다. 눈가의 살가죽을 경련하듯 떨면서 아버지는 믿어지지 않는 듯 뚫어져라 사내를 보고 있었다. "니,니, 니가 ......차, 참말로 더, 더, 덕수라 마, 말이가?" "와요? 살아생전에 다시 못 들어볼 이름인 줄 알았능교?" 두 사람은 한참 동안 서로 마주 보고만 있었다. 아버지는 벽에 등을 기댄 채 그저 턱을 덜덜 떨고만 있었고, 사내는 바위처럼 꿈쩍도 않는 자세로 아버지에게 시선을 박고 있었다. 그들의 기묘한 모습에는 그러나 팽팽하게 당기고 있는 활시위같이 어느 한쪽이 한치의 틈만 보여도 삼시간에 와르르 무너질 것 같은 아슬아슬한 긴장이 있었다. "내, 내가 여기까지 와 왔는지 아능교?" 목이 꽉 잠기 음성으로 그가 천천히 입을 놀렸다. -p. 7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