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라는 우리 시대의 새로운 문화현상을 만들어 낸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저자 유홍준 교수의 안내를 따라 미술의 세계를 답사한다. 저자는 대중과 미술 사이의 난해한 벽을 허물고 예술을 미학적 감상 차원에서 사회적 문제와 실존적 물음에까지 연결시키고 있다.
책을 펴내면서
제1장 문화의 시각 정직한 관객 해외 문화재를 보는 눈 미술품 애호가를 위한 변명 국제화 시대의 정체성 사라져 가는 한 건축물에 대하여 경주, 그 영광과 오욕의 이력서 사라진 율곡 글씨 한국판 존경의 벽 대통령의 글씨체 공적 제1호론 비평가는 제일의 관객 엘레노어 하트니가 남긴 충고 분단의식 없는 통일 그림 그림의 급수 양립하기 힘든 두 개의 예술관 일본 『미술수첩』의 태도 돌변을 보고
제2장 전시장에서 박수근 30주기전 － 순박하고 따뜻한 서민의 정 김환기 회고전 － 서정적 모더니즘의 진수 박생광 유작전 － 살아 숨쉬는 ‘진채’의 아름다움 고암 이응로의 부음을 듣고 － 파란과 영광의 굵은 발자취 백남준의 〈굿모닝 미스터 오웰〉 － 21세기 예술가의 한판 굿 한묵 60년대전 － 모더니즘의 성공과 실패 강연균 수채화전 － 도회적 세련미와 건강한 향토성 김정헌의 공주교도소 벽화 － 우리 시대 벽화운동의 서장 임옥상의 〈아프리카 현대사〉 － 80년대 미술의 기념비적 노작 이두식전·최문호전 － 감성의 해방, 상상력의 확대 최민화전·송창전 － 분단을 넘어서려는 의지 박불똥전·이철수전 － 민족미술의 새로운 형식 모색 신영복의 글씨·최종태의 조각 － 구도자와 구도하는 자세 황재형전 － 쥘 흙은 있어도 뉠 땅은 없다 3인(박대성·윤광조·강대철)의 작업 － 작업만이 삶이라는 예술의지들 권용현의 작업 － 문명 비판을 향한 뚜렷한 자기 형식의 제시 남궁산의 판화 － 삶의 희망을 찾아내는 조각칼 김준권의 목판화 － 아름다운 목판화를 위하여 삼불 김원용의 문인화 － 그림 수필 같은 현대 문인화 이선우의 연 － 연과 그림에 대한 무서운 사랑 김익영의 공예 － 공예왕국, 한국 도예의 자존심 한애규의 도조 － 집을 점령한 여인의 이야기 청전과 소정전 － 근대 한국화의 두 전형
제3장 미술의 이해 현대미술에서 휴머니즘의 문제 서양 풍경화와 동양 산수화의 이념적 차이 일본화·중국화는 어떻게 전통을 계승했나 역사화의 전통과 과제 80년대 한국 목판화운동의 성과와 미래 미술교육과 미술비평 미술시장 개방에 대비할 화랑의 자세
제4장 책과 함께 해방 이후 미술사 저작 5선 해제 『《최순우 전집』－대안목의 눈으로 본 한국미의 본질 야나기 무네요시 『조선과 그 예술』－조선의 선에서 읽어낸 민예 사상 아놀드 하우저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좌파 지식인의 진보적 예술관
미술평론가로서 나의 글 쓰기는 크게 두 방향에서 이루어졌다. 하나는 미술계의 전문인을 향해 쓴 평론이며, 또 하나는 대중을 향해 쓴 시평(時評)이다. 평론가로서 본령을 삼자면 아무래도 전자의 일에 열중할 것이지만 그렇다고 후자의 작업을 부차적인 일감으로만 돌릴 것도 아니었다.
전자가 비평가로서 당대의 예술적 과제를 논한 것이라면 후자는 거기서 얻어낸 예술적 비전을 사회화시키는 대중적 실천인 것이다. 특히 우리 미술계의 일그러진 소통방식이나 현대미술에서 대중의 극심한 소외 현상을 생각할 때 참된 대중비평의 요구는 오히려 절실한 것이기도 했다. 이런 마음에서 대중을 향한 나의 글쓰기는 끊임없이 지속되어 왔으며, 세상이 나에게 주는 일감 또한 적지 않았다.
나는 미술은 인간의 일이고, 모든 인간의 일은 보다 나은 인간적 삶을 추구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따라서 한 작가의 창작 활동 속에는 어떤 식으로든 그 시대 사회의 문제의식과 인문정신이 스며 있게 마련이며, 이로 인하여 하나의 미술 작품, 하나의 미술 현상은 단순히 미학적 감상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문제와 실존적 물음에까지 연결되어 있다고 믿고 있다.
간혹 나의 시론이 미술과 문화의 영역을 넘어 정치와 사회 문제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결과들이다. 대중을 향해 쓴 시평들은 주로 일간 신문의 칼럼을 통해 발표됐다. 문화시평, 미술시평, 아침논단, 시론, 신춘기고 등 지면의 이름은 다양했지만 한 시대의 문화 현상을 진단하고 처방을 생각하는 뜻만은 같은 것이었다. 나는 이런 유형의 글들을 모아 '문화의 시각'이라는 이름 아래 제1장을 꾸몄다.
제2장 '전시장에서'는 전시회 리뷰와 짧은 작가론을 모아 엮은 것이다. 전시회 리뷰는 일간 신문이나 미술 잡지에 기고한 것이고, 작가 소론(小論)은 팸플릿의 서문이나 발문으로 쓴 것이다. 어느 경우든 작가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된 것이었으며, 그 예술적 생산을 평가하고 해설하면서 보다 나은 창작의 계기와 풍토가 조성되기를 바라는 마음만은 한결같은 것이었다.
제3장 '미술의 이해'에 실린 글들은 일반인들이 미술의 제문제를 이해하도록 쉽게 풀어쓴 미술론들이다. 그래서 비교적 장문이고 전문적인 내용도 많이 들어 있는데 어찌 보면 전문적인 내용을 대중적 형식으로, 쓸 수만 있다면 참된 대중비평을 위해서는 이런 글에 더 유념했어야 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제4장 '책과 함께'는 한국미술사 연구의 고전들을 단순한 서평이 아니라 해제를 쓰는 마음으로 기고했던 글을 모은 것이며, 아놀드 하우저의 업적을 기린 글은 개인적으로 각별한 영향을 받았던 흔적이기도 하다.
이렇게 하여 『정직한 관객』이라는 이름으로 한 권의 시평 모음을 세상에 내놓게 되었다. 그러나 여기에 실린 것이 그 동안 내가 쓴 시평의 모두는 아니다. 사실은 그 반도 안 될 정도로 추려 내야만 했다.
참된 대중비평을 위하여 본래 시평이란 아주 짧은 글로서 압축적으로 쓰지 않으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며, 또 그때 그 순간의 시의 성을 놓치면 호소력을 잃게 된다. 그러나 이런 조건을 갖춘 좋은 시평들이 책으로 엮을 때면 오히려 제 빛을 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시간이 흐르고 상황이 바뀌면서 빛나던 컬럼은 차라리 빛 바랜 옛 이야기가 되기 십상이며, 짧고 명쾌한 글은 간혹 가볍게 느껴진다. 더욱이 그때 그 순간에 그런 말을 하기에는 큰 용기를 필요로 했건만 시간이 흘러 상황이 바뀌고 보니 아주 나약한 발언으로 초라해 보인다.
이것은 하나의 아이러니인지도 모른다. 글이란 짧게 쓰기가 더 힘들고 쉽게 쓰기가 더 어려우며 현장감 있게 쓰기란 더욱 공력이 드는 법이니 약간은 억울한 마음도 생긴다. 나는 그런 글들은 이 책에는 싣지 않았다. 한 시점에서 제 몫을 단단히 한 것이라면 굳이 시평 모음에 끼지 못했다고 아쉬워 할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렇게 지난 10여 년 간 내가 평론가로서 살아온 편린들을 들추어보면서 버릴 것은 버리고 남길 것만 여기 모아 놓으니 묵은 청소를 한 상쾌함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인생은 간혹 정리하면서 살 필요가 있나 보다.
그러나 자신의 전 모습을 드러내 놓는 것은 항시 두려운 일이기도 하다. 사실 그 두려움으로 책 펴내기를 몇 번이고 망설이기도 했지만 이미 미술평론가라는 공인으로서 청탁받고 발표해온 것이니 대중에게 정직하게 제시하는 것이 도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그렇게 함으로써 나는 대중과 더 가까워질 수 있고, 대중적 검증 속에서 나의 시평이 더욱 성숙할 수 있으리라 믿어 본다. 부디 독자 여러분의 가차없는 비판과 애정 어린 충고를 기다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