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의 구체적 삶을 통해 사회경제사를 연구하는 현대 역사학계의 명저들에 대한 비평을 곁들인 해설 모음. '퍼옮김' 중심의 일상사 연구 유행과는 달리 저자로서의 '해석'에 주안점을 두었다.
[책머리에]
빈민과 걸인의 역사 나이프로 이를 쑤시지 말라 아리에스와 죽음의 역사 『연옥의 탄생』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하느님과 이윤의 이름으로 『물질 문명과 자본주의』 『밤의 전투』 성, 사랑, 가족의 사회사 인간이라는 병균 흰 설탕, 검은 비극 두 개의 섬
요약하는 자들은 지식과 사랑을 모두 망쳐놓는 놈들이다.(레오나르도 다 빈치)
이 책은 대학교 1∼2학년 정도의 학생들을 염두에 두고 썼다. 혹은 그 비슷한 지적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보아도 좋을 것이다. 즉, 역사학을 전공으로 하지는 않지만 약간의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그 동안 어떤 연구들이 이루어져왔는지에 대해서 너무 딱딱하지 않게 이야기해주면 좋아할 그런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여기에 실린 글들은 원래 학부 수업용으로 준비한 프린트물이었다. 수업과 관련해서 좋은 역사책들이 있으면 우선 나부터 찬찬히 읽은 다음 학생들에게 그 내용을 소개해주고자 했지만, 짧은 시간 동안 책 한 권의 전체적인 성격을 말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지라 대개는 횡설수설하고 마는 결과만 가져왔었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몇 쪽의 소개글을 써서 나누어주고 보충 설명을 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들이 여기에 모아놓은 이 글들이다. 그러니까 이 짧은 글들을 통해 우선 이런 책들이 있다는 안내를 했고, 다음으로는 그 책들에 대한 나 자신의 독서 경험을 보고한 셈이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성실한 학생들이 원저(原著)를 직접 읽어보게 된다면 좋겠다는 것이 원래의 바람이었다. 이 책 역시 그런 정도의 쓰임새만 있으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런 목적을 위해 될 수 있으면 서지 사항들을 자세히 쓰려고 했다. 한 가지 반가운 일은 처음에 책들을 소개할 때에는 원서로 읽을 수밖에 없었는데 마침 그 책들이 우리말로 번역된 경우가 많아서, 이제는 큰 수고를 들이지 않고도 여기에 소개하는 책들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서양의 역사학은 그 동안 부단히 발전해왔다.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려는 커다란 목적을 놓고 많은 역사학자들이 여러 방면에서 지난한 노력을 경주해왔고 그것은 곧 역사학 연구 영역이 광범위하게 확장된 결과로 나타났다. 지배 엘리트들의 정치적 갈등으로부터 시작해서 경제 활동, 지적(知的) 생산물, 더 나아가서 인간의 마음까지 읽어내려는 연구들이 쏟아져나왔다. 그와 같은 세련된 연구들을 빨리 수입하여 있는 그대로 추종하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어떤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는가 살펴볼 필요는 있고, 그런 연후 비판할 것은 비판하고 배울 것은 배운다는 열린 마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물론 여기에서 소개하는 책들이 현대 역사학의 조류를 대변하는 연구서들 가운데 체계적으로 고른 것은 결코 아니고 애초에 그럴 의도도 없었다. 원래 필자의 전공이 주로 서양 중세말과 근대초, 그것도 사회경제사이다 보니 고른 책들도 그 분야의 것들이 많고, 그렇지 않은 책들도 자꾸 그 시기에 맞추어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학생들에게 역사학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려 하다 보니 다소 과장되고 경망스러운 표현도 없지 않다는 점 역시 널리 양해를 구하는 바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