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편의 장편과 70여편의 증단편을 남긴 이범선의 소설세계에는 1950년 6.35가 남긴 우리민족의 상처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평안남도 안주군 신안주면 운학리에서 대지주 집안에 태어난 이범선은 고향이 학의 이미지를 주는 이름이었듯이 작가 자신도 일생을 고고한 학처럼 세속에 물들지 않은 채 잔잔하게 살다 갔다. 무대를 강원도로 잡았으나 정작은 작가 자신의 고향을 연상하는 <학마을 사람들>은 민속적인 학의 전설과 이를 믿고 소박하게 살고 있는 마을 사람들이 식민지로부터 8.15 6.25 를 겪으면서 어떤 수난을 받았는가를 차분하게 그려준다.
이범선
소설가. 평남 안주 출생이며 호는 학촌 1955년 <현대문학>에 감동리의 추천으로 단편 <암표> <일요일>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장했다. 대표작인 <오발탄>은 6.25전쟁 후 처절한 삶을 살아가는 한 가족의 일상사를 통해 민족분단 문제를 그려냈다. 인간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조물주의 오발탄 이라는 주인공의 절규와 발광하는 노모의 모습을 통해서 전쟁의 폭력성과 월남민들의 비애를 심도 있게 보여주고 있다.
1. 암표
2. 일요일
3. 학마을 사람들
4. 피해자
5. 오발탄
6. 표구된 휴지
학마을 사람들
학은 세마리 새끼들에게 날기를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둥우리 기슭에 나란히 올라선 새끼 학들은 어미에 비하여 그모양이 몹시 초라하였다. 마을 애들이 웃었다. 그러면 어른들은 곧잘 학의 편이 되어 양반의 새끼는 어려선 미운 법이라 했다.
어미 학이 둥우리 바로 윗가지에 올라서서 뭐라고 길게 한번 소리를 지르자 세 마리 새끼 학은 일제히 둥우리를 걷어 차고 날아갔다. 퍼덕퍼덕 날개는 쳤으나 그건 난다깁다 떨어지는 것이었다. 그들은 이리저리 흩어져 한 마리는 학 나무 밑마당에 한 마리는 이장네 지붕 위에 또 한 마리는 제법 멀리 밭 모서리에 선 뽕나무 위에 가 내렸다.
이렇게 그들은 날마다 나는 연습을 했다. 조금씩 조금씩 그 날아가 앉는 곳이 멀어져갔다. 어제는 우물가에까지 날았었다. 오늘은 저 동구의 물방앗간까지 날았다. 또 오늘은 그 앞 못께까지 날았는데 자칫하면 물에 빠질 뻔했다. 마을 사람들은 마치 자기네 어린애의 재롱을 자랑하듯 하였다.
드디어 그들은 저 들 건너편 낭에 쓱 옆으로 솟아나온 소나무 위에까지 힘들지 않게 날았다. 이젠 모양도 한결또렸 또렸해 졌다. 한 달쯤 되자 제법 어미들을 따라 보기좋게 마을 위를 빙빙 날아 돌았다. 어쩌다가 날개를 쭉 펴고 다섯 마리학이 한 줄로 휘 마을을 싸고 도는 ㅁ양은 시원스러웠다.
구월 하순 어느 날 새벽이었다. 학이 여느 날과 달리 요란스레 울었다. 이장 영감은 잠결에 그 소리를 듣고 펄떡 일어났다. 그는 그게 무슨 뜻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괭과리를 쳤다. 마을 사람들은 다들 학 나무 둘레에 모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