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서 비명이 들려오고 신음이 새어 나왔다. 눈을 부비고 사방을 유심히 살펴보니 국군의 시체들이 잔뜩 있었다. 후송 도중에 전사한 병사들이었다. 그 계곡은 이승과 저승이 뒤범벅이 된 죽음의 고지였다. 나는 눈을 뜨고 하늘을 보았다. 시신경은 가물가물했으나 소리는 잘 들렸다. '아직 살아 있구나. 그러나 무슨 힘으로 이 깊은 골짜기에서 빠져 나간담.' 막연하지만 나는 절망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내 의식은 점점 몽롱해졌다. '저 시체들도 얼마 전까지는 살아 있었겠지. 그런데 후소송되는 도중의 심한 출혈로 끝내는 숨이 끊어졌으리라.' 정중사는 풀 속에 쓰러져 있는 부상자를 발견하고 깜짝 놀라며 걸음을 멈추고 부상자를 유심히 살폈다. "야, 이건 정하사 아냐!" 그렇게 소리치며 장 중사는 달려가 후배의 몸을 일으켰다. "아니, 후송한다고 산을 내려왔는데 어찌된 거야!" 이렇게 말해도 나는 기진한 상태여서 말을 못하고 힘없이 눈만 뜨더라는 것이다. -본문[피오린 향로봉]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