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여름 계간지 「작가세계」에 중편으로 발표되어 본격소설의 미학이라는 문단의 찬사를 받았다.
아버지의 부재와 궁핍한 생활, 아버지를 기다리는 어머니의 끈질긴 생명력, 13세 소년을 화자로 내세운 이야기 전개, 폭설로 고립된 산골마을 등은 복고적 색깔을 띠지만 이야기를 끌고 가는 시적 상징의 연쇄고리는 장인적 솜씨의 세련미를 보여준다. 또한 서정적 묘사가 빼어난 이 소설은 눈쌓인 시골을 배경으로 한 한폭의 흑백사진을 연상시킨다. 이순을 앞둔 중견작가가 빛나는 감수성을 되살려낸 작품이다.
김주영
-1939년 경북 청송 출생.
-서라벌 예술 대학 졸업.
-1971년 <월간문학>에 <휴면기>가 당선되어 등단.
-장편소설로는 <객주>(전9권) <아들의 겨울> <천둥소리> <활빈도>(전5권) <고기잡이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 <외설 춘향전> <화척>(전5권) <야정>(전5권) <홍어> 등이 있고, 소설집으로는 <겨울새> <새를 찾아서> 등이 있다.
-1983년 <외촌장 기행>으로 한국소설문학상
-1984년 <객주>로 제1회 유주현문학상
-1993년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1996년 <화척>으로 이산문학상 수상
아버지가 집을 떠난 지 6년째가 되었다. 뱀이 똬리를 틀듯오직 외곬으로 버티고 앉아 간절하게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으나, 아버지의 거처를 수소문하지 않는 어머니의 공허한 기다림만은 여전했다.
삼례가 훌쩍 떠나고 말았던 겨울을 지나, 산기슭 아래의 논두렁에 자운영꽃이 붉게 피는 봄이 왔고, 지느러미에 살이 오른 붕어 새끼들과 송사리 떼들이 방천둑 아래의 봇도랑 여울을 거슬러오르고 있었다. 겨울을 지난 송사리 떼들의 경계심은 지진계와 같이 예민했다. 재빠르게 헤엄을 치다가도 얼른 스쳐 지나는 사람의 그림자나,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에도 놀라 삽시간에 흩어지거나 하류 쪽으로 쏜살같이 사라지곤 하였다.
흐린 날을 좀처럼 볼 수 없었던 그해, 오월 하순의 햇살은 언제나 아침나절부터 깨진 유리그릇처럼 눈부셨다. 산등성이 위로 까치발을 하고 성큼 올라선 햇살이, 밤사이 달빛이 걸러낸 마을 뒤쪽 숲속으로 흐드러지러고, 새순 냄새가 듬뿍밴 하늬바람이 일어나 떡갈나무와 오리나무 잎사귀들을 해작이기 시작하면, 먼 산속에선 뻐꾸기소리가 고즈넉했고, 마을 뒤 숲속에선 이따금씩 수꿩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단 두 음절로 끝맺음되는 수꿩의 울부짖는 듯한 울음소리는, 말고 깨끗한 서정적 여운이 진하게 남는 여느 새소리와는 딴판이었다. 누적된 회한이 내장을 송두리째 훑어나가는 듯한 그 열적은 울음소리는, 오감을 만개시키는 음율 따위가 실려 있지 않았고, 정서적 친밀감을 이끌어내는 유채화와 같은 감상적 회상력도 없었다. 느닷없이 시작해서 겁에 질린 것처럼 꾸엑꾸엑 단 두 음절만 가파르게 토해내는 그 울음소리는, 투정 섞인 정한은 듬뿍 묻어 있었지만 암꿩의 화답도 없었으므로, 목멘 만큼 비생산적인 악보를 갖고 있었다.
끊임없이 이동하는 유목민들은 모든 소유물을 몽땅 가지고 다닌다. 비단과 향수, 그리고 씨앗과 소금, 요강과 유골 하물며 고통과 증오까지도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닌다. 격정적인 삶으로 그 모든 것이 탕진되는 날 하나의 무덤이 거친 바람이 흩날리는 초원에 마련될 것이다. 작가가 그렇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