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7년 전북 정읍 우리에게 있어 하재봉은 시인이라기보다 문화비평가, 혹은 문화게릴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가 시인으로 등단하여 도시시 계열의 시로 평단에 주목을 받았다는 사실은 문화비평가로서의 명성을 쌓고 있는 지금 거의 잊혀져 가는 것만 같다.
80년대 독재 권력의 칼날이 서슬 퍼랬을 때도 그는 이른바 '실천' 계열의 노동시·민중시·정치시와는 다른 방식의 문학적 대응을 했었다. 또한 후기산업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광폭한 정치적 억압구조 아래에 놓여있을 당시 '왜곡된 현실을 왜곡된 방식'으로 그려낸 이른바 '해체시' 계열과도 다른 시 세계를 구축한다.
그는 시를 존재의 가치와 세계의 의미를 포괄적으로 조망하려는 노력으로 쓰곤 했는데, 산업혁명 이후 생산-소비의 노동력이 확대·재생산되는 공간으로서, 각종 기능이 분업화 해감에 따른 증가된 도시의 흡인력에 의해 도시가 더더욱 비대해져 가는 모순을 그려내고자 했다.
특히 도시자본의 농촌 침투에 의한 농촌 경제의 피폐화와 농민층 분해 현상으로 도시로 유입된 도시빈민, 분배의 불공평성, 익명성, 폭력과 섹스 그리고 광분하는 스포츠 등등 도시인을 쾌락으로 이끄는 삶의 방식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이 그의 시의 주된 주제의식을 이룬다.
'나'를 주어로 삼는 그의 대부분의 시 문장들은 너무 직설적이어서 우리가 시를 읽으며 기대하는 울림의 미덕을 종종 배반하기도 한다. 그의 시가 미학적으로 잘 짜여진 시라는 평가를 못 얻는 데는 그런 이유도 있을 터이다. 그의 시행들이 대체로 길게 느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의 시에 대해서 평단의 일각에서는 대체로 '현란한 이미지와 실패한 잠언들'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그러나 그가 보여주는 문명비평적인 시각에 대해서는 아무도 그 재기발랄함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지 못할 것이다. 하재봉 시들이 갖고 있는 난점을 그 스스로 극복하여 다시 시인 하재봉으로서 만날 날을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