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과 함께 달라지는 생활의 단면들과 임신, 출산, 육아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초보 부모가 겪는 에피소드들을 6∼8컷의 만화에 녹여내고 있는 비빔툰 시리즈 제3권.
이 책은 번잡스런 아들 다운이의 동생, 겨운이의 탄생과 그들의 하루하루의 모습을 들여다보게 한다. 이제 말 배우기에 재미를 붙인 활달한 성격의 아들 다운이, 다운이에게 사랑을 나눠 갖는 법을 알려준 동생 겨운이, 보통 주부로 아이들을 위해선 수퍼맨이 되는 엄마 활미, 영원한 셀러리맨의 표상 정보통, 그들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그리고 있다.
홍승우
1968년 서울에서 태어나 홍익대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했다. 대학 시절에 그는 만화 모임 '네모라미'의 창단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제1회 신한은행 만화공모전에서 금상을 수상했다. 1998년 <한겨레리빙>에 <정보통사람들>을 그리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고, 1999년부터 현재까지 한겨레신문에 <비빔툰>을 연재하고 있다.
펴낸 책으로는 <비빔툰> 1,2권과 <비빔툰 3 - 다운이에게 동생이 생겼어요> 가 있다. 2001년 <비빔툰> 으로 '오늘의 우리만화상'을 수상했다.
아이가 태어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5살, 3살이 되었네요.아직도 두 아이의 아빠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지만 그 녀석들 덕분에 아직도 일상의 단맛 쓴맛을 느끼고 있습니다.생각해보면 일상이라는 것은 참 지루하기도 하지요?똑같은 생활 패턴의 반복이 사람을 탁탁 숨막히게 하니까요.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린 많은 순간을 놓치고 지나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아니면 일상을 ‘지겹다 지겹다’하며 주문을 외우는 것처럼 자기 최면을 걸고 있는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들고요.그만큼 사람들은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저도 일상이 매번 즐겁지만은 않다는것을 압니다.그리고 현재를 즐거원하지 못할 만큼 점점 약아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합니다.어느덧 비빔툰 네번째 책이 나왔고 언제나 그랬듯 이 책을 통해서 독자여러분들이 가족에 대한 생각, 일상에 대한 생각에 작은 파장이 있었으면 합니다.그리고 과거나 미래가 아닌 바로 지금. 지금 이 순간을 즐겁게 생각할 수 있는 눈의 역할이 되었으면 합니다.
<< 가족, 그 알 수 없는 사랑과 용기 >>
이상한 존재들해체의 시대인 80년대에 시인들로부터 가장 먼저 버려졌던 대상 중에 하나가 가족이었다. 그 가족은 이성복 시인이 “아버지, 아버지… 씹새끼,”(「그해 가을」)라는 아버지 살해에서부터 시작해 “아무 부모도 나를 키워 주지 않았다/쥐구멍에서 잠들고 벼룩의 간을 내먹고/아무 데서나 하염없이 죽어가면서/일찍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일찍이 나는」)는 최승자 시인의 가족을 통한 자기 부정, 그리고 조금 더 직접적이지만 성기완 시인의 가계는 우리네 가족의 일반적인 풍경을 얘기해주고 있다. “묵묵히 똥을 치우시는 엄마는/전통의 적이다/아버지는 어머니가 없을 때/전통을 달래주는 수호자다”(「전통의 힘」) 할아버지를 미워하는 아버지와 아버지를 미워하는 어머니. 그것이 지금 우리의 가족 풍경이고, 외면할 수 없는 우리의 가계도이다. 따지고 보면 자기 아이들 때문에 할 일도 못하고 전전긍긍한다든가, 너무도 당연하게 부모들에게 자신을 보살필 것을 요구하는 아이들은 얼마나 이상한 풍경인가? 정말이지, 일찍이 나는, 어머니가 보여준 나에 대한 헌신이 내 평생의 죄의식이 되어 있음을 고백해야 한다. 내가 어쩔 수 없이 시에서도 고백했듯이 가족들은 태어나 보니까 거기에 있는 존재들일 뿐이었다. 이 이상한 존재들을 내가 사랑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것.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가족이라는 이름하에 나를 사랑하고, 나 또한 그들의 사랑에 보답해야 했다는, 이 부자연스러운 관계가 만들어내는 것이 가족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이다. 홍승우가 그려내고 있는 『비빔툰』의 가족들도 이 이상한 존재의 관계에서 그리 멀지 않다. 얼핏 보면 ‘사랑’과 ‘이해’로 충만한 것처럼 보이는 정보통과 생활미의 가족도 직장에서 핍박받는 남편의 상사에 대한 생활미의 이중적인 적개심처럼 ‘이해’와 ‘근성’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우리는 쉽게 알 수 있다. 이 가족이라는 이상한 존재들은 가족 이외의 것에 대해서는 공동으로 대처하면서 가족과 가족의 대립에 대해서는 동물적으로 반응한다. 홍승우의 가족 이야기가 신문 연재 만화의 안이한 주제에서 벗어나 가족이라는 제도에 대한 의문형을 완성하고 있는 것도 그가 제도 안에 숨어 있는 불합리를 모른 체하지 않는다는 데 있을 것이다. 한 마디로 가족이라는 제도 안에는 동물들이 산다는 것이다. 서로 다른 환경 속에서 성장해온 성인들이 만나 한 가정을 꾸미는 이 불합리한 제도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회의를 홍승우는 꼼꼼하게, 결코 과격하지 않게 지적하고 있다. 시댁에 대한 며느리의 불만, 그런 아내에 대한 남편의 본능적인 반응, 사랑의 환상 대신 희망이라는 (어쩌면 너무 허약한) 끈을 이어가며 자신들의 선택을 긍정해야 하는 서글픈 현실이 이 만화에서는 줄줄이 꿰어져 나온다. 그것들은 너무 사실적이어서 서글프다. 그것은 정보통과 생활미의 딸 겨운이가 거울을 보며 하는 말, “널 보고 있으니까 기분이 막 좋아진다… 나는 침 많이 흘리는 애가 좋더라”(p. 5)에서 단적으로 나타난다. 침이 통제가 안 되는 아이의 대사로서 이 만화는 웃음을 자아내지만 제도의 모순된 얼굴을 긍정해야만 하는 현실로 읽힐 때 우리는 서글퍼진다. 이러한 겨운이의 태도는 결혼에 대한 정보통과 생활미의 태도로 그대로 이어진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란 영화를 패러디하며 “그래, 우린 미쳤다 왜!”(p. 190)라고 홍승우가 말할 때, 그는 소시민의 어쩔 수 없는 한계를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 뭐?라고 반문하고 있다. 제도의 모순과 그 모순까지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모순을 사랑해야 나와 내 가족이 존재한다는 것. 가족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견디는 것이란 것을 홍승우는 분명하게 전달하고 있다. 고독한 존재들80년대에 감옥에 갔다 온 친구의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의 얘기로, 독방에 있을 때 하도 심심해서 자기도 모르게 자기와 얘기하는 버릇이 생겼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그 친구는 사회에 나와서도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하면서 혼자 중얼거리는 일이 많았다. 어느 날 술자리에서 친구들이 이제 그만 좀 혼자 중얼거리라고 타박했더니 이 친구는 그 자리에서 술잔을 들고 벌떡 일어나 다시는 혼자 중얼거리지 않겠노라고 호기 있게 선언했다. 좌중의 친구들이 모두 잔을 부딪치며 그 결심을 축하해주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그렇게 호기롭게 선언한 이 친구가 그대로 잔을 들고 앉으면서 “그런데 왜?” 하고 금방 스스로에게 묻는 것이 아닌가. 모두 웃었지만 나는 그 얘기를 듣고 술만 취하면 자기를 분열시켜서 앞에 앉혀놓고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자기와 열심히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건배까지 하는 친구가 생각났다. 나는 그 친구와 어느 정도까지 취하면 셋이서 마셔야 한다는 걸 안다. 내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 둘 말고 또 한 사람이 있다. 고독의 끝에서 우리는 항상 스스로와 대면하게 된다.홍승우가 그리고 있는 가족들도 마찬가지이다. 얼핏 보면 『비빔툰』의 주인공들은 상당히 합리적으로 대화를 이끌어나간다. 하나의 인격체로서 서로를 존중하며 상대방의 세계를 침범하지 않으려 애쓰는 게 역력하다. 그러나 언제나 해결은 대화가 아니라 대화가 끝난 침묵의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대화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대화는 확고한 서로의 입장을 확인하는 데서 그친다. 「부부싸움」 연작의 마지막은 서로의 확고한 입장을 확인하고 정보통이 창틀에 기대 담배를 피우며 내뱉는 대사에서 마무리된다. “결혼 6년. 우린 서로 너무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p. 157) 그렇듯이 말로 해결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 단지 그런 현실을 버려버리느냐 아니면 그대로 받아들이며 사느냐, 하는 선택의 문제이다. 결혼이라는 제도의 모순을 그대로 받아들였을 때 남자와 여자는 고독해진다. 그때부터 혼잣말은 시작된다. 『비빔툰』에는 이 분열의 대상이 인물들의 조력자로서 등장한다. 정보통의 분열체인 외계인, 다운이의 분열체인 티나노, 겨운이의 분열체인 밥풀, 분열체가 없는 인물은 엄마인 생활미 한 사람이다. 그러나 생활미에게도 분열체는 아니지만 조력자는 있다. 생활미의 조력자는 그것이 실제 인물인 만큼 다양하다. 친정엄마일 수도 있고, 동창들일 수도 있고, 자신의 옛날의 환상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후배일 수도 있다. 생활미는 그렇게 끝없이 자신의 고독을 표출한다. 심지어 생활미의 가장 특이한 조력자인 ‘오래된 벤치’도 비록 무생물이긴 하지만 실체이다. “삶은 정답이 없어. 하지만 사랑과 용기가 방법이 될 순 있겠지”(p. 27)라는 오래된 벤치의 조언은 이 만화 『비빔툰』을 관류하는 소중한 주제이다. 그러나 정보통의 분열체인 외계인은 ‘오래된 벤치’와는 반대편에서 사랑과 용기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끄집어낸다. 외계인은 인생의 내리막길을 걱정하는 정보통에게 인생의 황혼을 겪지 않게 0세부터 35세까지의 삶을 두 번 살 수 있게 해준다. 인생의 황혼을 걱정하던 정보통은 환희에 차서 외친다. “야`! 이제 며칠만 있으면 난 다시 태어난다`! 두려움이여, 안녕`! 이제 날 기다리는 건…” 그때 외계인은 시계를 보며 천진하게 말한다(이 만화에서는 외계인의 그 천진한 표정에 주목해야 한다). “두 번의 죽음이지”(p. 93).인생의 내리막길을 받아들이고 가는 한 번의 죽음과 인생의 내리막길이 없는 두 번의 죽음 가운데 우리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술이 있는 이유」(p. 153)나 「두려움」(p. 93) 같은 만화는 뼈아픈 실존에 관한 이야기이다. 일상을 통찰로 끌어들이는 이런 힘은 아마 홍승우 만화의 톡특한 매력일 것이다. 평범한 일상 속에 환상의 인물들을 끌어들여 설득력과 재미를 같이 추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존 버닝햄의 그림동화 『지각대장 존』에서 존을 지각하게 만드는, 도저히 학교 가는 길에서는 만날 수 없는 동물들은, 선생님은 믿지 않지만 존에게는 분명히 존재하는 것들이다. 그렇듯이 티나노와 밥풀은 이 만화를 어느 정도 읽어가다 보면 정말로 그런 것들이 존재할 것만 같은 착각이 들게 할 정도로, 아이들에게 일어나는 일상의 불가사의한 측면을 설명해주고 있다. 어른들을 소외시키는 아이들만이 침잠할 수 있는 그 이상한 고독. 만약 남자가 영원한 아이라면, 남자들은 평생 티나노와 밥풀의 친구일 것이고, 그 남자의 여자는 죽을 때까지 외로울 것이다. 박스 바깥의 화자(話者)또 하나, 『비빔툰』에는 외계인과 티나노, 밥풀 말고도 이 만화 속에서조차 보이지 않는 분열체가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바로 이 만화의 화자이다. 『비빔툰』의 화자는 정리가 안 된다. 정보통이다가, 생활미가 화자로 나서기도 하고 다운이나 겨운이가 화자가 될 때도 있다. 또 만화가 자신인 것 같기도 하다가 전혀 다른 제 삼자인 경우도 있다. 가만히 살펴보면 그냥 지문일 때도 있다. 「메멘토」(p. 134)에서 엄마가 애들을 꾸중할 때의 시간 경과는 분명 지문에 해당할 텐데, 마지막 컷에서 왜 혼나는지 모르는 화자는 분명 다운이 아니면 겨운이다. 아니면 그 둘이든지. 그리고 「기억 나니」(p. 137)에서 “어? 유성이다”의 화자는 그 누구도 아니다. 차라리 그 말의 화자는 그럴 땐 독자라고 생각해도 괜찮다. 그런가 하면 「끄떡없어」(p. 138)의 화자는 제 삼자의 시점이다. 이야기에 따라서 화자가 달라진다. 이야기에 따라 화자가 적절히 달라지므로 해서 『비빔툰』은 ‘삶의 정답’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는 걸 확실히하고 있다. 어떤 때는 다운이식의 정답이 나오고, 어떤 때는 겨운이식의, 그리고 정보통의 해답이 제시되면서 그게 꼭 사랑과 용기는 아니지만 살아가는 방법이 될 수 있는 어떤 것을 내놓는다. 대부분의 신문 만화들이 단일한 화자를 전면에 드러내면서 처음에는 인기를 끌다가 나중에는 쉬 식상해지는 걸 볼 때 홍승우의 다중적인 화자는 『비빔툰』의 인기 비결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볼 때 홍승우는 신문 연재 만화의 한 전형을 만들어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더욱이 『비빔툰』의 화자는 이 만화를 보는 불특정 다수의 분열체로서 만화 주인공들의 분열체와도 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말하자면 화자가 만화 바깥에서 존재한다. 그것은 독자가 만화를 인정하게 된다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만화가 만화를 읽는 독자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인정한다는 말과 같다. 『비빔툰』은 바로 그 전도된 설정으로 독자들로 하여금 쉬이 만화에 빠져들게 한다. 앞서 얘기한 「기억 나니」에서, 아이들이 자신들의 분열체와 함께 초생달을 활 삼아 살을 날리는 장면은 그뒤 갑자기 나오는 정보통의 광대짓으로 독자들에게 얼른 설명되지 않는다. 아이들이 살을 날리는 장면은 그래서 마지막 단 한 컷으로 다시 등장한다. 여기서 독자들은 앞의 살을 날리는 장면과 마지막에 살이 별을 맞춰 떨어뜨리는 장면을 연결하게 되고, 정보통의 광대짓에 웃음을 터뜨리는 생활미의 실루엣으로 떨어지는 유성을 발견하는 것이다. “어? 유성이다”(p. 137)는 어쩌면 정보통의 속에 말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만화를 보는 독자들도 정보통과 똑같이 되뇌일 것이다(화자가 만화의 박스 바깥에 있기 때문이다). 만화의 진행과 인물의 대사, 그리고 (이번에는) 독자들의 속에 말이 정확히 일치하면서 이 만화는 서로에게 무심해진 부부의 상처를 안쓰럽게 보여주고 있다. ‘삶에는 정답이 없고 사랑과 용기가 방법이 될’ 수 있다고 계속해서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홍승우에게 설득당했다. 사랑과 용기, 그런 게 있긴 있다면 아마 그것만이 방법일 수 있을 거라고. 그리고 그 사랑과 용기가 얼마나 비참한지도 나는 아마 알아야 할 것이다. 「동물의 왕국」(p. 169)에 나오는 생활미의 표정이야말로 그 비참한 사랑의 얼굴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어머니의 얼굴은 위대하다고 했던가? 사랑과 용기의 비참함을 감내하고 있는 얼굴. 그 얼굴을 보고 웃을 수 있게 해준 만화가에게 감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