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문명의 토대가 되는 기술, 활폐, 도시. 서유럽에서 인도, 중국, 일본까지의 지역적 포괄성. 15-18세기의 산업화 이전 시대의 물질문명과 인간의 관계를 아날 파의 총수 브로델이 세계사적으로 조망하고 있는 이 책은 당대의 의식주의 일상생활이 그의 놀라운 상상력과 치밀한 실증에 의해서 생생하게 되살아났다는 평가와 함께 현대의 부동의 고전이 되었다.
1920년에 프랑스의 로렌 지방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는 지리학을 전공하여 1923년에 학위를 받고 알제리, 프랑스, 브라질 등지에서 강의하였다. 그는 제 2차 세계대전 중에 독일군의 포로가 되어 5년 동안 감옥에 있었는데, 이때 그의 첫번재 대작인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와 지중애 세계>를 구상하였다. 이 책은 1949년에 출판되었다. 한편 그는 마르크 블로크와 뤼시앙페브르가 창립한 유명한 <아날> 지의 편집위원이 되었는데 1956년에는 편집인이 되었다. 이 잡지는 오늘날가지도 세계 역사학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브로델은 고등연구원의 멤버였고 1962년부터는 인간과학 연구소의 소장을 역임하였으며, 1985년에 사망하였다.
- 일러두기 - 서론
[1] 교환의 도구 1. 유럽 : 최저 수준에서의 교환기구 2. 유럽 : 최고 수준에서의 교환기구 3. 유럽 이외의 세계 4. 잠정적인 결론
[2] 시장과 경제 1. 상인과 상업순환 2. 상업의 부가가치 : 수요와 공급 3. 시장과 지리 4. 국민경제와 무역수지 5. 시장의 자리매김
[3] 생산 : 자기 영역을 벗어난 자본주의 1. 자본, 자본가, 자본주의 2. 토지와 돈 3. 자본주의와 전산업 4. 수송과 자본주의적인 기업 5. 다소 부정적인 결론
생산 : 자기 영역을 벗어난 자본주의
신중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태만했긴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면 주제가 맞지 않았던 것일까? 지금까지 나는 자본주의라는 말을 대 여섯 번밖에 쓰지 않았고, 가능하면 쓰지 않으려고 했다. 모호하고 과학적이지 못하며 잘못 쓰이고 있는 이 "전투적인 용어"를 영구히 추방해버리자는 의견을 가지 사람들은 "왜 그렇게 안 하려고 하겠는가!" 하는 반응을 보일 것이다. 더구나 이 말은 전 산업화 시기에 대해서 쓴다면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으니 말이다. 개인적으로 말하면 나는 오랜 고민 끝에 이 성가신 용어의 추방을 포기했다. 내 생각에 이 용어를 폐기하면서 동시에 그것이 불러일으킨 논쟁들까지 무시해버린다는 것은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그 논쟁들은 오늘날의 문제와도 예민하게 결부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가에게는 과거를 이해하는 것과 현재를 이해하는 것은 같은 작업인 것이다. 역사에 대한 열정이 오늘날의 문제에 대해서 거를 두고 그 앞에 뚝 멈추어서 위험하다는 태도를 보인다면 그것기 과연 옳은 일일까? 어쨌든 그러한 조심이라는 것은 허망한것이다. 자본주의라는 말은 문으로 내쫓으면 창문으로 기어들어온다. 전산업화 시기에도 어떤 경제활동 중에는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불가피하게 이 용어를 쓸 수 밖에 없으며 그 외에 다른 어떤말도 맞지 않는 것들이 있다. 그런 경제활동에 대해서 산업적인 "생산양식(사실 나는 이 산업적인 '생산양식'이 자본주의가 가진 핵심적이고도 필수불가결한 특성이라고는 믿지 않는다.)"이라는 말을 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고전적인 시장 교환과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 >> [조선일보 / 김태익기자]
세계 역사학계에서 20세기 후반의 가장 중요한 저작으로 꼽히는 프랑스 역사학자 페르낭 브로델의 대저 <물질문명과 자본주의>가 마침내 전 6권으로 완역 출간됐다．민중들의 자질구레한 일상생활사에 대한 탐구를 특징으로 하는 프랑스 아날학파의 2세대 대표주자였으며，70년대 '역사학의 황제'라고까지 불린 브로델(1902~1985년)의 이 저작은 인류의 역사를 거대이론의 틀로써 설명하려는 가장 성공한 사례 중 하나로도 꼽힌다．
국내에 아날학파의 이념과 방법에 대한 소개가 시작된지는 오래됐지만，그 참맛을 느끼게 하는 방대한 원전 저작의 번역소개는 드물었다는 점에서 신선한 지적 체험을 안겨줄 수 있다는 평이다．서울대 서양사학과 주경철 교수는 92년부터 번역에 착수，6년간의 작업끝에 원고지 1만장 분량의 이 저서를 최근 도서출판 까치에서 출간했다．
<물질문명...>은 15세기에서 17세기에 이르는 서유럽을 중심으로 한 세계경제 현실을 서민의 일상사가 뼈대를 이루는 '물질문명'，그리고 '시장경제'와 '자본주의'라는 3개의 개념을 통해 특유의 독창적이고 치밀한 시각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전의 경제사가들과는 다르게，15~17세기의 역사를 단순히 산업혁명을 위한 준비기간으로서 점진적으로 발전해 가는 과정만은 아닌것으로 파악하는 데 브로델 학설의 특징이 있다는 것．그것은 오히려 수세기가 지나도 변치않는 자급자족적 하부경제인 물질문명과，투명하고 규칙적인 교류가 이루어지는 시장경제，그리고 불투명한 독점의 세계인 자본주의가 상호작용하면서 형성-발전해온 역사다．
그러나 일반 독자의 입장에서 흥미를 끄는 것은 흔히 정치사나 사건사 등에 치중해온 종래의 역사서술과는 다르게，역사학 서술이 이럴 수도 있구나 감탄할 만큼 일상생활의 미세하고 자질구레한 구석까지 파고드는 아날학파 특유의 연구경향이다．
예컨대 조선시대인 17세기 경기도 어느 지방 양반 가문의 하루 영양 섭취량이 몇 칼로리였을까？ 또 그중 곡물이 차지하는 비중은？ 이런 것을 알게된다면 조선시대 사람들의 삶을 손에 잡힐듯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게 된다．이런 즐거움을 <물질문명...>은 주는 것이다．
<물질문명...>에는 1800년경 베를린의 한 석공가족의 가계예산이 나오는데 이에 따르면 총지출 중 빵 44.2％，빵 이외의 식물성 식품 11.5％，알콜 음료 2.1％，동물성식품 14.9％ 등으로 식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72.2％였다는 것．브로델은 총 식비 중 빵이 차지하는 비중이 50％를 훨씬 상회하는 점을 지적，이 가정의 식생활이 얼마나 단조롭고 힘든 것이었는가를 밝힌다．
마찬가지 방법으로 프랑스 혁명 직전 파리의 포도주 소비량은 1년에 1인당 1백20ℓ였다는 것，1493년 바르셀로나에서 콜럼버스의 귀환을 축하하는 축제가 열린 후 매독이 유럽에 갑자기 확산됐다는 것 등을 밝힌다．각 권의 말미에 실린 저자 자신의 원주가 2천개를 넘는다는 것도 인상적．'전체사'를 꿰뚫어본다는 이념이 필연적으로 이런 박학함을 요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프랑스 로렌지방 태생인 브로델은 소르본느대학에서 지리학을전공한 후 역사학으로 전환，'아날'지의 편집인，고등연구원멤버 등을 역임했으며 <물질문명...>과 함께 또다른 명저인 <펠레페 2세 시대의 지중해와 지중해세계>를 남겼다．번역자 주교수는 "모든 고전이 그러하듯 단순히 정보를 얻는다기보다는 하나의 커다란 세계를 경험하고，그럼으로써 내 자신의 세계를 되돌아본다는 생각에서 번역을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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